[여행honey] 푸르름의 서사…천리포수목원과 여름바다
(태안=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여름철 나뭇잎의 빛깔은 이전의 연두색에서 좀 더 짙게 변해간다.
따가운 햇볕이 비치든 비가 내리든 나무는 점점 우거진다.
무더운 계절에 피는 꽃들도 무심한 듯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
짙어가는 녹음(綠陰)을 볼 수 있고 인근에 바다까지 있다면 계절을 느끼기에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서해안에 있는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방문해 푸르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차량으로 가까운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아 해변을 따라 펼쳐진 이색적인 풍경도 만났다.
천리포수목원에서 펼쳐지는 꽃과 나무의 향연
서울에서 차량을 출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다가 서산을 거쳐 태안에 도착했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니 흙 빛깔이 생기가 도는 붉은 벽돌색이다.
밭에서 마늘을 뽑아 트럭에 싣는 주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천리포수목원에 도착하기 전 인근에 있는 만리포해수욕장에도 잠깐 들러 바다를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리포 해변에 인접한 천리포수목원에 다다랐다.
태안 소원면에 있는 이곳은 국내 최초의 사립 수목원으로 유명하다.
미군 장교로 한국에 와서 귀화한 고(故)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이 1970년 수목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전체 면적은 59만㎡ 규모인데, 이 중 6만5천㎡의 밀러가든이 일반에 공개된 상태다.
천리포수목원 정문 입구를 지나 잠깐 걷다 보니 '금주의 아름다운 식물'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지금 꽃이 핀 식물 6개를 사진과 함께 설명해 둔 것이다.
이어 곰솔이 늘어서 있는 솔바람길을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주제의 정원이 펼쳐졌다.
어린이정원, 동백나무원, 수국원, 작약원, 연못정원, 클래마티스원, 비비추원 등이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이미 개화 시기를 지난 식물은 볼 게 없지 않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식물의 형태를 계속 살필 수 있고 정원에서 다른 식물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도 눈여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목원 안으로 발을 디딜수록 점차 새 소리가 들렸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가볍게 흔들리며 햇빛에 반짝였다.
순간이지만 적막감을 주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도시와는 다르게 소란스럽지 않고 고요하며 정돈된 느낌이랄까.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닛사 나무, 물가에서 자라는 낙우송처럼 특색있는 나무에 먼저 눈길이 갔다.
천리포수목원이라고 하면 설립자가 사랑했던 호랑가시나무를 떠올리게 된다.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윤기가 나고 뾰족하다.
지금은 열매가 푸른색인데, 겨울이면 빨갛게 된다.
잎 모양이 조금씩 다른 여러 품종의 호랑가시나무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목련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에선 이미 목련꽃이 졌지만, 천리포수목원에선 여름에 개화하는 품종을 볼 수 있다.
나무도 나무지만, 수목원 곳곳을 누비다 보니 향긋한 냄새에 이끌렸다.
방문했을 때 활짝 피었던 돈나무, 인동덩굴, 때죽나무 등의 꽃향기는 달콤하고 매력적이었다.
수목원에서 꽃을 보는 즐거움은 기본이다.
푸르른 잎을 배경으로 노랑꽃창포의 유쾌한 색감, 해당화의 분홍빛, 붉거나 하얗거나 연노란 노루오줌의 파스텔 색조 등 빛깔이 넘쳐났다.
붉은병꽃나무가 주는 수수함, 수련의 풍성함, 만병초의 시원시원함 등 꽃이 주는 감성도 다양했다.
한여름이 되면 수국은 물론이고 배롱나무, 목련 등이 더욱 꽃피워져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군데군데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에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었다.
나무 아래에 의자가 놓여 있어 쉬어가기 좋았다.
가족, 친구 사이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저마다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파도 소리 들리는 수목원과 낭새섬
꽃과 나무, 향기에 매혹돼 수목원을 거닐다가도 한쪽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쏴아'하는 파도 소리가 친근하고도 은근하게 느껴졌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가니 천리포 해변이 눈앞에 보였다.
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주변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바닥에 배를 깔고 졸린 듯한 눈을 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바라본 바다는 너무 눈이 부셔 실눈을 떠야 했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수목원에서 향기를 맡으며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해변과 인접한 수목원 둘레에는 데크가 조성돼 있어 수목원과 바다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해변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는 낭새섬이 보였다.
민병갈은 낭새라고 불리는 바다직박구리가 이 섬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새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낭새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수간만의 차로 인근에선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진다. 낭새섬은 천리포수목원이 관리하는 비공개 지역이다.
수목원 측의 안내로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비공개 지역을 잠시 방문했다.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나무와 풀들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비공개 지역은 지난 4월 열렸던 목련축제처럼 수목원이 해당 프로그램을 일부 운영할 때 참가자들이 부분적으로 볼 수 있다.
수목원에는 방문객이 숙박할 수 있는 한옥과 초가, 양옥 시설이 있다.
장소에 따라 나무와 꽃을 가까운 곳에서 감상할 수 있고 인근에 해변까지 있으니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산책하기 좋다고 한다.
바다 옆 모래언덕과 식물들…신두리 해안사구의 이색 풍경
이제 천리포수목원을 뒤로하고 원북면 신두리로 향했다.
해변을 따라 국내 최대의 해안사구가 있는 곳이다. 신두리 해안사구의 전체 길이는 3.4㎞ 정도다.
빙하기 이후 약 1만5천년 동안 형성된 것으로, 해안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면서 모래가 이동해 언덕을 이뤘다.
2001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사구라는 말은 사막의 빛깔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직접 가 본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작고 낮게 자리 잡은 식물들의 빛깔이 섞여 있었다.
데크를 걸으며 처음 보는 이색적인 풍경에 호기심이 일었다.
생태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식물들의 이름을 접했다.
갯메꽃, 갯쇠보리, 통보리사초, 갯그령 등 생소한 이름들이다.
방문했을 때 아직 피어있던 해당화에선 장미와 비슷한 향기가 났다.
모래땅 위에 낮게 이어져 있는 순비기나무의 잎에선 싱그러운 향기가 났다.
해가 잘 들고 건조한 모래에서 자라는 초종용도 볼 수 있었다.
사철쑥 뿌리에 기생해 자라는 초종용은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의 줄기에 보라색 꽃을 층층이 피웠다.
전체의 풍경에 묻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매우 귀하게 다가왔다.
식물들뿐만이 아니다.
명주잠자리의 애벌레 상태인 개미귀신도 볼 수 있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은 이러한 사구의 생태를 보면서 놀라워한다고 한다.
사구와 해변, 하늘을 번갈아 보며 데크를 걷는 동안 사람들의 발소리와 대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곰솔숲에 이르러선 솔방울이 땅에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호젓함을 일깨워줬다.
최경자 신두리 해안사구 생태해설사는 "방문객들이 모래언덕 앞에서 삶을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풀고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소나무밭과 연결되는 공간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신두리 해안사구에 와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구와 맞닿아 있는 신두해변도 걸어봤다.
온화해 보이는 해변과 독특한 생태환경을 지닌 해안사구를 함께 둘러봤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포만감이 일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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