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보였던 원년 백인 외인, 뚜껑 열어보니 대박이었다
최근 NBA 대세로 떠오른 니콜라 요키치, 루카 돈치치 등으로 인해 조금씩 깨지고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주류는 흑인 플레이어들이다. 특출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여전히 양과 질 모두에서 흑인을 감당하기는 쉽지않다. 이는 KBL 각 구단에서 외국인선수들을 뽑을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아무래도 토종 선수들이 갖추지 못한 특유의 탄력과 운동능력을 기대하는 부분이 많은지라 대부분 흑인 선수 위주로 영입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백인 선수가 선택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프로농구 역사를 돌아보면 수는 적지만 뛰어난 백인 외국인선수들이 간간히 존재했다. 흑인 홍수 속에서 그들이 선발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자신들만의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운동능력에서는 밀리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나 파워, 센스, 슈팅 등을 앞세워 경쟁력을 가져갔다.
KBL을 거쳐간 백인 외국인선수들로는 에릭 이버츠, 브라이언 브루소, 알렉스 스텀, 존 와센버그, 바비 레이저, 크리스 랭, 아담 에드워드 첩, 벤자민 핸드로그텐, 크리스 버지스, 제러드 호먼, 폴 밀러, 케빈 오웬스, 그렉 스팀스마, 개럿 스터츠, 맷 볼딘, 제프 위디, 미로슬라브 라둘리차, 닉 미네라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팬들 기억 속에 남는 선수로는 단연 '코트의 신사', '득점기계' 등으로 불린 에릭 이버츠(49‧198cm)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일시즌 기준 역대 최고 외국인선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외국인 MVP 출신 크리스 랭(44·209cm), 탄탄한 수비력을 앞세워 NBA진출까지 이뤄낸 그렉 스팀스마(38·211cm) 등도 거론될만하다. 하지만 매시즌 꾸준한 활약을 통해 초창기 조니 맥도웰 등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외국인선수중 한명인 이버츠를 따라가기는 힘들 것이다.
◆ 에릭 이버츠 정규리그 통산기록(1997시즌부터 2002~03시즌까지) ☞ 통산 218경기 출전 평균 27.6득점, 9.9리바운드, 1.9어시스트, 1.6스틸, 1.2블록슛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02년 3월 10일 대구 동양전 = 58득점 / 3점슛 성공 ☞ 2002년 12월 18일 전주 KCC전 = 6개 / 어시스트 ☞ 2003년 2월 23일 대구 동양전 = 7개 / 리바운드 ☞ 2001년 11월 10일 울산 모비스전 = 19개 / 스틸 ☞ 1997년 2월 4일 수원 삼성전 = 8개 / 블록슛 ☞ 2001년 1월 7일 수원 삼성전 = 6개
프로 원년, 특별지명을 통해 KBL에 입성
묵묵하고 튀지않는 성향때문에 무명에 가까웠을 것이다는 오해(?)도 있었지만 이버츠는 대학시절 나름 잘나가던 선수였다. ‘빅 이스트(Big East)’ 컨퍼런스 소속 명문 빌라노바 대학교 출신으로, 대학시절 입학동기 케리 키틀즈와 함께 팀내 주축선수로 활약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KBL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빅맨을 맡았지만 본래 그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였다. 쟁쟁한 흑인들 사이에서 이버츠의 운동능력은 평범 이하였고 3번으로서의 기동성도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서 중용되고 컨퍼런스에서 손꼽히는 득점원으로 인정받았던 배경에는 빼어난 슈팅 능력의 영향이 컸다.
3점슛 성공률이 2학년 시절 39.2%에 달했으며 3학년에 올라가서는 평균 2.8개의 3점슛을 43.9%의 성공률로 꽂아넣었다. 컨퍼런스 3점슛 1위의 기록이었는데 이때 3위를 기록한 선수가 코네티컷 대학교의 득점기계로 불리던 레이 앨런이었다. 해당 시즌 이버츠와 키틀즈 콤비는 빌라노바대를 컨퍼런스 2위에 올려놓은 것을 비롯 컨퍼런스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앨런의 코네티컷대(정규리그 1위팀)를 격파하고 컨퍼런스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모든 NCAA 소속 선수들이 그렇듯 이버츠 역시 NBA를 꿈꿨고 1996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하지만 팀 동료 키틀즈가 전체 8순위로 지명받은 것과 달리 낙방하고 만다. 슈팅력은 좋았지만 스윙맨으로서 운동능력, 사이즈 모든 면에서 특별할게 없었던 이버츠를 원했던 팀은 나오지않았다.
지극히 결과론이지만 하필이면 당시 드래프트가 역대급 드래프트이기도 했다. 1순위 앨런 아이버슨을 필두로 마커스 캠비, 스테판 마버리, 레이 앨런, 앤트완 워커,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시, 저메인 오닐, 샤리프 압둘라힘, 페자 스토야코비치 등 엄청난 선수들이 쏟아졌던 이른바 황금 드래프트다. 이에 이버츠는 프랑스 리그에서 한시즌을 치른후 1996년 11월 LA에서 열린 KBL 첫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된다.
NBA 드래프트에서야 밀릴 수 밖에 없었다지만 당시 KBL 트라이아웃에서 이버츠는 최상급 외국인선수로 꼽힐만 했다. 하지만 총 14명의 선발 명단에도 뽑히지 못하면서 여기서마저 고배를 마시고 만다. 당시 이름값은 물론 실제 기량적으로도 이버츠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줄줄이 지명된 것을 감안했을 때 선뜻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다.
당시 각 구단은 지금처럼 해외 농구에 정통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기에 어떤 유형의 외국인선수가 국내에서 잘 통할지도 감이 안잡히던 상황이었던지라 그저 겉보기에 화려해보이는 선수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당초 외국인선수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운동능력에 더해 흡사 NBA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노룩패스와 다양한 득점 스킬을 선보인 제럴드 워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비진을 휘젓고다니던 야생마 칼 레이 해리스, 언더사이즈 빅맨이지만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포스트에서의 존재감이 남달랐던 클리프 리드, 무시무시한 덩크를 연신 찍어대며 무력시위를 멈추지 않았던 빈스 킹 등이 대표적이다.
운동능력과 탄력이 좋은 선수가 우선적으로 선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사이즈는 나쁘지 않았지만 평범해보이는 운동능력에 스피드, 탄력 뭐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버츠가 눈에 찰리가 없었다. 빈 자리를 잘 찾아다니며 쉽게쉽게 득점을 올리고 정확도 높은 3점슛을 연신 꽂아댔지만 당초 기대했던 외국인선수상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이버츠와 KBL의 인연은 끝나는가 싶은 상황에서 반전이 생겼다. 당초 8번째 팀으로 참가 예정이었던 상무가 국방부의 불허조치로 인해 발이 묶여버린 것이다. 난감해진 KBL측은 부랴부랴 대타를 찾아나섰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산그룹을 모기업으로한 광주 나산 플라망스가 마지막 주자로 입성하게 된다.
당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이에 나산은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외국인선수를 선발해야했고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든 상태에서 뽑은 선수가 바로 빠른 발을 활용한 돌파와 미드레인지 점퍼를 주특기로하던 몬태나 주립대 출신의 공격형 가드 에릭 탤리와 이번화의 주인공 이버츠였다. 그렇게 KBL에 입성한 이버츠는 얼마 지나지않아 자신을 지나친 여러팀 관계자들을 한숨짓고 후회하게 만들어버린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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