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숨진 산모와 태아 인골이라고?[이기환의 Hi-story](91)

2023. 7. 1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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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한반도 경북 경산에서 살았던 성별·계층별·나이별 복원 얼굴. 영남대박물관 소장 259구의 인골 중 가능한 개체에서 골라 복원 중이다. 주피장자는 물론이고 순장자 중에서도 15세 전후의 청소년과 12세 이하의 어린이까지 복원했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근자에 영남지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는 연구과제가 있습니다. 경북 경산 임당유적(임당동·조영동·부적리)에서 나온 인골 및 동물뼈 연구입니다. 며칠 전 ‘임당유적 출토 인골의 최신 연구성과와 과제’라는 제목의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중 2019년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해온 얼굴 복원 프로젝트의 성과물이 눈에 띄더군요.

귀족 여성(2019), 여성 순장자 및 귀족 남성(이상 2020)에 이어 순장 청소년(2021)과 순장 어린이(2022)까지 복원했습니다. 머리뼈 분석과 얼굴 근육층과 형태소 형성, 피부층 완성 등의 기법으로 되살려놓고 있는 겁니다.

아니 유의미한 인골 자료가 얼마나 되기에 1500년 전의 사람을 신분별·나이별·성별로 복원할 수 있을까요. 이게 가능하답니다. 임당유적에서 수습된 500여 구의 인골 중 영남대박물관이 259구를 소장하고 있고요. 동물뼈는 2만5000여 점이나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골 및 동물뼈의 보관 및 연구·복원에는 드라마 같은 사연이 담겨 있답니다.

도굴로 드러난 옛 압독국의 실체 1982년 1월 14일이었는데요. 부산세관이 해외에 밀반출하려던 순금·은제 유물 15점을 극적으로 적발합니다.

수사결과 경북 경산 임당동의 구릉에 조성된 과수원(복숭아밭)에서 훔친 도굴품이었습니다.

경산 임당동은 심상찮은 지역입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압독국(기원후 102년 신라에 투항)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일대(임당동·조영동·부적리) 등에는 상당수 고분이 산재해 있었는데요.

그곳 과수원 구릉의 고분 9기 중에서 도굴된 금·은제품이 해외 밀반출 직전에 회수된 겁니다.

뒤늦게 호떡집에 불이 났고요. 서둘러 영남대박물관의 정식발굴이 진행됐습니다.

임당유적 조영동 고분의 주인공은 3~5세 어린아이로 추정된다. 두개골 일부와 치아 일부가 남아 있는 아이의 인골에는 귀고리와 옥장신구가 착장돼 있다. 아이의 인골 머리맡 항아리 속에는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그 인골과 반대 방향으로 겹쳐 15세 전후의 순장자 인골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신분이 높은 아이가 죽자 15세 전후의 시종(몸종)을 순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과연 도굴분이었는데도 3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도굴되지 않은 3기의 무덤(5·6·7호분) 중 7호분에서는 더욱 깜짝 놀랄 만한 유물이 보였는데요.

완형의 금동관을 비롯해 금동관모,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 신라산 귀금속 일체가 출토됐습니다.

무덤 주인공이 신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옛 압독국 지도자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후 두 차례 더(1988~1990) 후속발굴 작업을 벌였는데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 사이 ‘1000년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덤만 1700여 기가 확인됐죠. 그중 이 임당유적만의 ‘시그니처 유물’이 바로 인골과 동물뼈입니다.

물체질로 걸러낸 선견지명 당시 영남대박물관 발굴팀은 흙 속의 인골 및 동물 뼛조각까지 물체질로 일일이 걸러 수집했는데요.

선견지명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1980년대) 인골이나 미라는 환영받지 못한 유물이었습니다.

발굴작업 중 인골이나 미라가 출토되면 곧바로 화장 혹은 이장하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한 예의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렇다면 영남대박물관은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인골·동물뼈를 수습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발굴을 지휘한 정영화 교수(현 영남대 명예교수)가 고인골을 연구하는 구석기 전공자였거든요. 그것이 이제와서 ‘신의 한 수’가 됐죠. 요즘은 오래전에 일어난 미제 강력사건을 DNA 분석으로 해결하곤 하잖아요.

고고학도 마찬가집니다. 뼈에 담겨 있는 DNA로 옛사람의 혈연관계와 건강 및 질병 상태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 생겼죠. 고고유전학입니다. 고인골에서 사람마다 다른 DNA 염기서열을 분석해서 개인과 집단의 유전적 특징을 찾아내는데요.

영남대박물관도 2018년 임당유적의 고인골 가운데 46개 시료를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사의 과학연구소에 보냈는데요.

뜻밖의 낭보가 들렸습니다. 46점의 시료 중 35점에서 사람의 DNA가 존재한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후 영남대박물관은 30년간 보관한 인골 및 동물뼈를 대상으로 다각적인 융합 연구 및 분석, 복원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대략 1500년 전 이 지역에 살았던 이른바 ‘경산인’들의 삶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후 10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 옛 압독국의 후예가 둥지를 틀고 있던 경북 경산 임당유적(임당동·조영동·부적리 고분). 1982년 이후 발굴조사에서 170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됐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신분에 따라 달랐던 1500년 전 식단 며칠 전 학술대회 때 발표된 내용 중 새롭게 정리된 것만 추려볼까요.

우선 1500년 전 경산인들의 식단이 눈길을 끄네요. 임당유적 중 조영동 고분에서 수습된 인골 48개체와 동물뼈 14개체의 탄소 및 질소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한 자료인데요. 안정동위원소 분석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뼈의 화학적 성분을 연구·분석함으로써 생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파악하는 기법입니다.

분석결과 경산인들은 쌀·보리·콩 같은 작물을 주로 먹었고요. 꿩·기러기·오리 등 조류와 말·소·돼지 같은 육상동물, 상어·방어·복어·패류 같은 해상동물 등을 고루 섭취했답니다. 요즘의 식단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한 가지 유의미한 분석자료가 있는데요. 성별이나 연령, 무덤의 종류에 따라 식단이 달라지지는 않았고요.

다만 무덤 주인공과 순장자, 즉 신분의 차이에 따라 섭취한 음식이 달랐습니다.

신분이 높은 무덤 주인공은 꿩과 오리 같은 야생조류와 상어, 방어, 복어 등 어패류를 많이 섭취했습니다.

반면 낮은 신분의 순장자는 식물과 함께 멧돼지와 토끼 같은 육상초식동물 위주로 먹었답니다. 경산은 내륙지방이죠.

바닷가에서 어패류를 운반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겠죠. 낮은 신분의 순장자에게까지 어패류가 돌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출산 중 사망의 극적인 예(임당 유적 조영동 고분군)가 있다. 무덤 안에는 21~35세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놓여 있었는데, 그 옆에 열 달 남짓 성장한 태아의 뼈가 있었다. 출산 과정에서 혹은 출산을 전후한 시점에서 산모가 태아와 함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3~5세 어린이와 같이 묻힌 15세 순장자는? 신분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예가 임당유적 조영동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확인됩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3~5세 어린아이인데요. 아이의 두개골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아이는 금동제 굵은고리 귀고리와 굽은옥 장신구를 달고 있습니다. 머리맡에는 ‘굽다리 접시’와 ‘목긴 항아리’ 같은 제의용 도기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목긴 항아리 속에는 흙과 돌로 만든 여러 가지 장난감이 들어 있었고요. 그런데 이 아이의 바로 위에 15세 정도의 순장자가 매장돼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금동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연구원이 흥미로운 해석을 하네요. 즉 이 무덤의 주인공인 어린이가 사고나 질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이 아이를 생전에 돌봤던 몸종을 순장했다, 아이의 신분을 상징하는 화려한 장신구를 달아주었고, 아이의 생전 장난감들을 각종 제사용품과 함께 묻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금동관을 넣고 무덤을 덮었다, 뭐 이렇게요. 비통한 심정으로 장차 이 아이가 성장하면 물려주었을 금동관을 마지막으로 올려놓았을 겁니다.

물론 저는 슬픔에 빠진 그 아버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사망과 함께 속절없이 따라죽어야 했을 15세 순장자의 가련한 신세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출토유물 가운데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동신발, 은제허리띠 등 신라 중앙정부가 압독국 지도자의 후예에게 사여한 귀중품들로 추정됐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일가족 순장의 비극까지 임당유적에서 순장의 흔적은 한두 예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일가족이 순장된 예도 있습니다.

예컨대 5세기 초반 축조된 무덤의 ‘딸린 덧널(부곽)’에 순장된 성인 남성(36~50세)과 10세 전후의 여자아이는 아빠와 딸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5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다른 무덤에서는 ‘으뜸덧널(주곽)’에 안장된 주인공(성인 남성·31~40세)의 곁에, 여자아이(4~8세)가 누워 있었는데요. 그의 발치에 축조된 ‘딸린덧널’ 안에는 성인 남성(41~60세)과 성인 여성(36~50세)이 순장돼 있었습니다. DNA 분석결과 ‘딸린덧널’에 순장된 성인 남녀는 부부이고요. 이 부부의 딸이 무덤 주인공 곁에 순장된 여아(4~8세)임이 밝혀졌습니다.

또 5세기 후반 무덤의 으뜸덧널에 순장된 어린아이와 20여 년 뒤 축조된 또 다른 무덤의 순장자(혹은 주인공)는 남매 관계로 추정됐습니다. 순장자들은 생전에 주인공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시동이나 시녀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무덤 주인공이 어린아이일 경우 또래의 어린 순장자와 함께 성인 여성(21~35세)이 묻히기도 했습니다. 어린 주인공을 모시던 유모나 보모가 순장된 것도 서러운데, ‘죽은 뒤에 같이 놀아줄 또래 아이’까지 희생시킨 겁니다.

무엇보다 순장제도가 국법으로 금지된 것이 502년(신라 지증왕 3)입니다. 그렇다면 5세기 중·후반에 순장된 이들이야말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출산 도중 사망한 산모와 태아 유골 이번 학술대회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발표가 ‘경산인들의 사망률 분포’입니다.

259개체 중 성별과 사망연령 등을 파악할 수 있는 112개체를 분석한 결과 21~35세의 여성이 많았는데요. 즉 ‘여성’(추정 포함)인 개체의 21~35세 사망 건수(28개체)가 ‘남성’(추정 포함·16개체)을 훨씬 능가합니다.

반면 36세를 넘어가면 남성(추정·31개체)이 여성(21개체)보다 많아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 여성들의 수가 유의미했다는 얘기죠.

출산 중 사망한 극적인 예(임당유적 중 조영동 고분군)가 있습니다.

이 무덤 안에는 21~35세의 여성 인골이 가지런히 묻혀 있었는데, 발굴 당시에는 몰랐던 결정적인 착안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 달 남짓 성장한 태아뼈가 존재했다는 것을 몰랐던 거죠.

“이 젊은 여성 인골은 엄마이고, 태아뼈는 그 엄마의 아이였을 겁니다. 출산 과정에서, 혹은 출산을 전후한 시점에서 산모가 태아와 함께 안타깝게 사망한 것으로 해석됩니다.”(김대욱 연구원)

1500년 전 경산인들의 평균키(남성)가 그리 작지 않았다. 임당유적 출토 인골 중 키를 추정할 수 있는 31개체를 분석한 결과 남성들의 평균키는 165.36±3.8㎝ 정도로 추정됐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2002년 경기 파주 교하에서 450여년 전(1566) 출산 도중 숨진 ‘산모와 태아’의 모자 미라가 확인된 적이 있는데요.

그보다 1000년 전인 5~6세기 발생한 ‘출산 도중 사망’의 고고학적인 증거가 임당유적에서 나타난 겁니다.

또 하나 ‘경산인의 사망분포도’에 따르면 최소 40세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년 인골이 112개체 중 11개체에 불과했는데요. 40세를 넘긴 분이 별로 없다는 얘기죠. 그만큼 평균 수명이 낮았다는 겁니다.

DNA로 찾아낸 1500년 전 혈액형과 혈연관계 DNA로 파악한 무덤 피장자들의 혈연관계도 눈길을 끕니다.

모두 172개체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부모-자녀 혹은 친형제 자매’로 추정할 수 있는 개체가 11쌍이나 확인됐습니다.

또 ‘조부·조모와 손자’, ‘삼촌·고모·이모-조카’, ‘이복·이부 형제자매’ 등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개체가 37쌍 분석됐습니다.

이 밖에 인골 31개체의 대퇴골을 토대로 분석해보니 경산인(남성)의 평균키는 165.36±3.8㎝였습니다.

2020년 복원된 남자 주인공과 여성 순장자를 대상으로 인골 DNA를 분석했는데요. 기막힌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인골의 혈액형이 AO형이고, 젖당 내성이 없어 우유를 먹었을 때 배탈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까지 밝혀냈죠.

또 여성 순장자는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하지 못해 술에 금방 취하고 숙취가 심했을 것 같다는 분석까지 나왔고요. 심혈관계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남성 주인공도 급성 심장사나 죽상 동맥경화증 등에 취약했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1500년 전 돔배기 또 임당유적 고분에 부장된 토기에는 다양한 음식 잔존물이 확인됐는데요.

이중 상어뼈가 유난히 돋보입니다. 상어라고 하면 경상도에서는 ‘돔배기’를 떠올린다네요.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토막 내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음식이랍니다. 포를 뜬 돔배기를 꼬치에 가지런히 꿰어 식용유를 두른 팬에 굽는데요. 이 돔배기의 역사가 2000~1500년이나 된다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DNA 세계가 무궁무진, 신비롭지 않습니까. 1980년대 물체질로 흙 속의 인골과 동물뼈를 걸러냈을 때만 해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겠죠. 대단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고, 또 ‘신의 한 수’라 해도 넘치지 않는 칭찬입니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I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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