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 하겠는가[편집실에서]
지난주 수많은 뉴스 중에서 한 대목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에스더’라는 테니스 로봇을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네트 이쪽 편에서 공을 넘기면 인공지능이 작동해 착지 지점 근처로 알아서 이동해 공을 받아넘긴다는 건데요. 테니스 황제로 불린 로저 페더러(최근 은퇴),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등이 꽂아 넣는 스매싱을 받아내는 건 어림도 없지만, 초보 수준의 구질은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당장은 훈련용 연습 상대에 머물겠지만, 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세로 미뤄,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로봇이 테니스공을 주고받는 풍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종목에 따라 체급을 나눠 시합을 벌이는데, 로봇과 대결을 벌이다니 이거, 공정한가요. 공정성 여부를 떠나 재미는 있을까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던 문화·예술 분야도 잠식 속도가 놀랍습니다. KT 자회사인 음악 플랫폼 기업 지니뮤직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주스와 함께 비작곡가인 일반인들도 누구나 손쉽게 작·편곡을 할 수 있는 서비스인 ‘지니리라’의 시범 버전을 최근 선보였습니다. 이용자들이 흥얼거리거나 즉흥 연주를 하면 AI가 알아서 디지털 악보를 그려주는 단계를 목표로 한답니다. 음악 이론을 몰라도, 작곡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지니의 요술 램프처럼 뚝딱 하고 노래를 창작할 수 있게 된다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고요. 저 멀리 계신 줄만 알았던 바흐, 헨델,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예술 거장들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관현악단 지휘자 하면 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전설적인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 테고, 국내에선 정명훈·금난새 등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요. 2008년에 큰 인기를 모은 지상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온 괴팍한 성정의 지휘자 ‘강마에’(김명민 분)를 떠올리는 분도 계시겠네요. 다른 모든 분야에 로봇이 치고 들어와도, 최후까지 인간이 남아 버틸 것만 같던, 고차원의 종합예술인 마에스트로 영역에 최근 ‘에버6’라는 이름의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에버6가 지난 6월 3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고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실험공연에 나섰는데요.
주간경향이 그 현장을 직접 다녀왔습니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무대를 지켜본 주영재 기자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관람평을 내놓았습니다. 로봇 주제에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연주자들과 교감까지 하며 장장 1시간 10분에 걸친 공연을 그럴듯하게 마쳤다네요. 자세한 관람기를 이번 호에 실었습니다. 인간답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또 무엇이어야 할까.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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