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한중 갈등, 국익에 '무익'… 함께할 일은 해야 [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백범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2023. 7. 12.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中, 일자리 문제 등 심각… 한국과의 '대화' 바라
한반도 안정 및 北 개방 유도 위해서도 협력해야

[편집자주] 백범흠 교수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연방행정원 행정학석사, 프랑크푸르트대 정치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한 뒤 경제외교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외무고시 27회 합격 후엔 주중국대사관 총영사, 주다롄영사사무소장,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 강원도 국제관계대사,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 사무차장 등을 거쳤고, 중국청년정치대와 연세대에서 객원교수를 역임 또는 재임 중이다. '미중 신냉전과 한국 Ⅰ·Ⅱ' '중국' '한중일 4000년' 등 7권의 저서를 낸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다.

백범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 뉴스1

(서울=뉴스1) 백범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 한반도의 심장부가 서울·인천 등을 에워싸고 있는 경기만(灣)이라면, 중국의 심장부는 베이징·톈진(天津)·다롄(大連) 등을 에워싼 보하이(渤海)만이다. 베이징 동남부에서 보하이만을 지키는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는 랴오둥(遼東) 반도의 다롄과 함께 보하이만으로 향하는 해로를 통제하는 '아르고스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칭다오 사람들은 젊은 여성을 '다만'(大嫚)이라고 부른다. '다만'은 '숙녀'란 뜻의 독일어 '다메'(Dame)의 복수형 '다멘'(Damen)'에서 유래했다. 자오저우(膠州)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칭다오의 역사가 독일 제2제국의 자오저우 조차(租借)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칭다오는 독일 2제국 조차 기간이던 1898~1914년 크게 발전했다. 칭다오는 이후 일본제국 점령지, 중화민국령, 일본제국 점령지, 다시 중화민국령과 미국 해군 제7함대 주둔지를 거쳐 중국 국민당·공산당 간 내전 끝에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령이 되었다.

산둥성은 면적 15만7000㎢, 인구 1억300만명, 국내총생산(GDP) 약 1조3000억달러로 광둥(廣東)·장쑤(江蘇)·저장(浙江)성 등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공업지대 가운데 하나다. 산둥반도엔 과거 신라인들이 집중 거주하며 교역하던 '신라방'(新羅坊)이 자리하고 있었고,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반독립국가 치청(淄靑) 혹은 제(齊)나라를 세운 근거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산둥성엔 25만~30만여명의 한국인과 재중동포가 산다. 칭다오는 중국의 대표적 전기전자업체 '하이얼'(海爾)과 '하이센스'의 본사 소재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두 기업 모두 산둥대와 함께 첨단 반도체 독립과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을 위해 '극한'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보하이만으로 향하는 해로를 통제하며 경기만을 바라보는 '아르고스의 눈' 칭다오가 갖는 군사적 중요성은 최근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더 커졌다.

중국 당국은 산둥반도를 만주­와 네이멍구(内蒙古)를 관할하는 '북부전구'(北部戰區)에 포함시켰고, 칭다오엔 북해함대 본부를 두고 있다. 앞서 독일 2제국이나 미국이 뤼순(旅順)­다롄 주둔 러시아(옛 소련)군 견제를 위해 칭다오를 군사 기지화 했듯, 중국도 보하이만 방어와 경기만 인근 경기도 평택에 주둔 중인 우리 해군과 주한미군 견제를 위해 칭다오와 산둥반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올해 '한중일 3국 협력 국제포럼'(IFTC)이 이달 3일 칭다오에서 열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올해 IFTC엔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중국 외교 '1인자'인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 외사 판공실 주임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한중일 3국 관계관과 전문가들은 "역사·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한중일 3국은 지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이웃국가"임을 확인하는 한편, 3국 국민 간 상호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배가하며 '상호 존중과 공동 이익 추구'의 정신 아래 힘과 지혜를 모아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강 전 의장은 특히 "한중일 관계 개선·증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3국 정상이 직접 머리를 맞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 간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가면 3국 국민 모두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다름'은 받아들이고 '공통점'은 확대해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상호 인식 제고와 함께 관계 증진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 <자료사진> ⓒ AFP=뉴스1

왕 주임 역시 "무지개는 비온 뒤 뜬다"며 "한중일 3국이 갈등할 때도 있었지만 평화·교류의 역사가 훨씬 더 길었다"고 했다. 그는 "지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한중일 3국이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해가는 게 미래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중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다. 중국 정부는 △매년 1000만여명씩 쏟아지는 대졸 청년 일자리 △총 3억여명에 이르며 '제로 코로나' 3년 동안 실직한 1억5000여만명의 농민공 일자리 △'제로 코로나' 기간 사라진 5000만여개의 자영업 일자리 등 실업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한다.

중국의 대외 여건도 그리 좋지 않다. 미국과의 전략경쟁은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졌다. 여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에너지를 포함한 자원 수급도 과거만큼 원활하지 않다.

일자리 부족 문제가 장기화하면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나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가 지금 가장 고민하는 건 미국과의 대결이나 대만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 문제일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적미의 난, 황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이자성의 난, 태평천국의 난 등 왕조(王朝) 말기마다 일어난 대형 민란의 근본 원인이 실업 등 먹고사는 문제였다는 걸 잘 안다.

중국은 지금 한국과의 대화를 바란다. 그런데 한국의 대(對)중국 외교정책은 스스로의 외교 비전을 어떻게 설정할지와 직결된다. 한국의 특수과제인 한반도 문제와 함께 미중 전략적 경쟁 등 국제질서 전반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려해야 중국에 대한 정책도 나올 수 있다.

대(對)북한 봉쇄 정책이란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좁다. 중국이 북핵 폐기에 도움을 줄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못하게 하고, 나아가 핵동결·감축까지 이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중국과도 협력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미국이 글로벌 문제를 주도하겠지만,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만큼은 중국이 일정 부분 주도권을 행사하는 '복합질서'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일본 및 북한과의 관계,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의 안보적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한미동맹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 내부의 변화 가능성, 미국의 외교정책 변경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미국이란 바구니에만 우리가 가진 계란을 몽땅 담아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중국이 권위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고, 때론 '조공질서'식 관점으로 우릴 강박하며, 우리의 정체성과 직결된 역사·문화전쟁을 도발한다고 해서 중국과의 갈등을 되풀이하는 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과 함께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핵무기 시대인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군사전략을 창안한 손자(孫子)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위기에 빠질 일이 없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해야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있고, 그간 쌓인 오해를 풀며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최근 열린 IFTC가 한중일 정상회의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한다.

yellowapollo@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