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더랜드’, ‘서비스직 천재’ 신데렐라가 나타났다 [K콘텐츠의 순간들]

김선영 2023. 7. 12.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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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와 신데렐라를 조합한 ‘캔디렐라’ 스토리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킹더랜드〉는 이 같은 캔디렐라들의 필수 미덕을 좀 더 현실적인 노동조건 안에서 그려낸다.

올해 상반기 드라마 결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경향을 꼽자면 ‘올드스쿨의 재창조’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여성 복수극에 신계급사회의 모순을 결합한 〈더 글로리〉(넷플릭스), 현대판 여성 성공 서사의 대명사 ‘칙릿(Chick Lit·일과 사랑을 다루는 젊은 여성을 위한 장르 문학)’에서 여성의 야망은 한껏 키우고 로맨스는 완전히 제거한 〈대행사〉(JTBC), 줌마렐라 서사를 각각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일타 스캔들〉(tvN)과 〈닥터 차정숙〉(JTBC) 등이 대표 사례다.

6월17일 방영을 시작한 JTBC 금토 드라마 〈킹더랜드〉도 이 같은 경향에 속한다. 웃음을 경멸하는 남자 구원(이준호)과 미소가 사랑스러운 여자 천사랑(임윤아)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정통 로맨틱코미디다. 여기에 더해 구원은 국내 재계 서열 상위권 킹그룹의 후계자이고, 사랑은 킹그룹이 채용한 소녀 가장 출신 호텔리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신데렐라 로맨스이기도 하다.

JTBC 금토 드라마 <킹더랜드>.ⓒ앤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말하자면 두 겹의 올드스쿨 스토리에서 〈킹더랜드〉는 이중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로서는 전통적인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신데렐라 스토리에서는 나름의 재해석을 시도하는 전략이다. 후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감정노동’에 대한 차별화된 묘사다. 원래 국내의 신데렐라 로맨스 장르에서 여주인공의 감정노동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장르의 인기에 불을 지핀 1994년 작품 〈사랑을 그대 품 안에〉(MBC)에서부터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가족사적 상처나 애정결핍으로 인해 그늘진 캐릭터인 반면, 여자 주인공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캔디형’ 인물이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남주인공의 상처 입은 마음은 늘 여주인공의 밝고 따뜻한 성격으로 치유된다. 요컨대 국내 신데렐라 로맨스 장르의 핵심은 남주인공이 가진 부와 여주인공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의 교환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든 해맑게 웃어주는 캔디와 신데렐라를 조합한 ‘캔디렐라’ 스토리는 국내 신데렐라 로맨스 장르의 또 다른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킹더랜드〉는 이 같은 캔디렐라들의 필수 미덕을 좀 더 현실적인 노동조건 안에서 그려냄으로써 올드스쿨의 재해석을 꾀한다. 주인공 천사랑이 근무하는 킹호텔은 모든 직원에게 “하이엔드 명품 스마일”을 요구하는 곳이다. 직원들은 그 어떤 진상 고객을 만나도, 상사의 부당한 지시가 내려져도, “아름답게 헤르메스!”를 되뇌며 미소를 지어야만 살아남는다. 이 혹독한 세계관에서 여주인공 천사랑은 타고난 서비스직 천재로 그려진다. “1억짜리 스마일”이라는 찬사처럼 완벽한 자본주의 미소로 상무 화란(김선영)의 호감을 산 천사랑은 “2년제 대학 출신”에 대한 차별을 딛고 입사에 성공한다. 입사 뒤에는 킹호텔 내 최고의 ‘친절 사원’에 등극하며 “VVVIP 고객 담당”으로서 가장 고난도의 감정노동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1994년 MBC에서 방영한 <사랑을 그대 품 안에>는 ‘캔디렐라’ 스토리의 원조 격이다.ⓒ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 화면 갈무리

천사랑과 사랑에 빠지게 될 운명의 상대 구원은 공교롭게도 웃음을 혐오하는 남자다. 어린 시절 거짓 미소에 둘러싸여 자라나며 깊은 상처를 입은 경험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천사랑은 가식을 싫어하는 구원 앞에서만은 웃음이 사라진 맨얼굴을 보여준다. 감정노동자의 애환을 강조하는 설정은 천사랑의 친구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킹그룹 산하 면세점 직원 강다을(김가은), 항공사 승무원 오평화(고원희) 역시 대표적인 감정노동 서비스 직군이다. 드라마는 서비스 직종 피라미드 구조 최하층에 놓여 있던 세 친구가 중간관리자급으로 성장한 뒤에도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은 노동조건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 같은 묘사에도 모순적 한계는 존재한다. 구원을 진짜 구원하게 되는 것은 생계를 위한 자본주의 미소가 아니라 천사랑의 ‘진심이 담긴 미소’라는 점에서다. 그런 측면에서 〈킹더랜드〉 신데렐라 로맨스의 완성은 훨씬 더 고강도, 고순도의 감정노동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캔디렐라가 감정노동자로서 역할을 뚜렷하게 자각한다는 설정만은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모친 실종 미스터리의 향방은?

신데렐라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또 하나의 재해석 시도는 구원 모친의 실종 미스터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킹그룹 회장 구일훈(손병호)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아내와 사별한 뒤 회사 직원과 재혼한다. 그녀는 딸 하나만을 남긴 첫째 부인과 달리, 아들을 낳아 킹그룹이 가부장적 재벌 계보를 이어가는 데 ‘일조’했다. 이를테면 구원의 모친은 천사랑 이전에 신데렐라 신화를 성취한 인물인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의미심장하게도 ‘한미소’였다.

어느 날 한미소는 어린 아들 구원을 집에 두고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날마다 엄마를 찾는 구원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에게 한미소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본부장이 된 구원이 회사의 인사 서류를 모조리 뒤져봐도 한미소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한미소는 킹그룹 내에서 금기의 인물이 된 지 오래였다.

〈킹더랜드〉에서 구원 모친 실종 미스터리 플롯은 아직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본격적인 전개는 드라마 중반부 이후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아들이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날까 늘 걱정한다”라는 구일훈 회장의 공식 인물 소개는 구원과 천사랑의 로맨스에 결정적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한미소의 행방불명은 신데렐라 신화가 여전히 불안한 판타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가 될까, 아니면 더 단단한 로맨스 판타지를 위한 도구로만 쓰이고 말까. 앞으로의 전개가 올드스쿨 재해석 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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