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의 기쁨과 슬픔 [프리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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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한 어르신은 10대부터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다가 20대에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통계청이 새로 개발한 '국민시간이전계정(NTTA)'을 활용해 무급 가사노동이 연령별로 얼마나 생산-소비-이전되었는지 분석한 결과 한국 여성들의 '흑자(가사노동을 생산하는 양이 소비하는 양보다 많은 것)' 기간이 54년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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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한 어르신은 10대부터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다가 20대에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서울로 상경한 조카들까지 한집에서 돌보는 동안 50대가 되었다.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60대까지도 집 안은 늘 붐볐다. 10여 년 전부터는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
60여 년간 청소, 요리, 돌봄, 간호 등 가사노동을 쉼 없이 했으나 대체로 무급이었고 그걸 본인도 당연히 여겨 ‘집에서 논다’는 말을 종종 근황으로 전했다. 70대인 지금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고도 재래시장을 오가며 아침마다 급식을 꺼려하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다른 식구들의 끼니를 챙긴다. 최근 한 통계를 보다가 이 어르신의 미래를 보았다.
통계청이 새로 개발한 ‘국민시간이전계정(NTTA)’을 활용해 무급 가사노동이 연령별로 얼마나 생산-소비-이전되었는지 분석한 결과 한국 여성들의 ‘흑자(가사노동을 생산하는 양이 소비하는 양보다 많은 것)’ 기간이 54년에 달했다. 남성이 16년인 데 비해 압도적인 기간이다. 여성은 25세부터 누군가의 가사노동 서비스를 받는 것보다 생산하는 양이 많아지는데, 그런 추세가 84세까지 이어진다.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이 86.6세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끝이 나지 않는 게임이다. 이 통계에서만은 ‘적자’가 남는 장사다.
앞선 사례뿐 아니라 글을 읽는 동안 누군가 한 명씩은 떠올랐을 것이다. 한국의 노년 여성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비슷한 삶의 패턴을 보인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단지 숫자로 환산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통계는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누군가는 생애를 통틀어 종사해온 가사노동의 가치를 시장에서 통용되는 (동일한 노동에 대한) 임금수준으로 환원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9년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총 490조9190억원이고 이는 국내총생산액의 25.5%다. 여성이 356조410억원(72.5%)을 생산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의 저자는 엄마들이 왜 온종일 가사를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지 의문을 품었고 ‘언어적 배려의 차원보다 더 깊이 들어간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돈 얘기를 해야 한다’였다. 세대가 달라지고 가사와 돌봄 노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식이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런 일’들은 가정 내 여성의 몫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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