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사기 방지’ 칼 빼들었지만…금융당국 3가지 난제
①자산·부채·시장가치 등 곳곳에 모호한 규정
②제도밖 사각지대 여전, 제도안 시스템 문제
③‘외국기업은 규제 무풍지대’ 기울어진 운동장
정책 실효성 논란 없으려면 충분한 의견수렴 중요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회계·공시 제도개선안을 공표했지만,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코인 사기를 막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이대로 가면 실효성 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은 이르면 10월 시행으로 빠른 집행을 강조했지만, 업계에서는 충분한 의견수렴과 시스템 구축부터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모호한 규정·사각지대·기울어진 운동장까지
11일 ‘가상자산 회계·공시 투명성 제고 방안’ 관련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가상자산·회계 업계는 △모호한 규정 △가상자산 감독 사각지대 해소 및 시스템 완비 △국내외 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 극복 과제 등에서 쟁점이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11일 발표안은 초안”이라며 “앞으로 두달 간 회계처리 감독지침·주석공시 의무화 관련해 각계 의견수렴을 거칠 것”이라고 전했다.
우선 모호한 규정 문제다.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 제정안에서 가장 모호한 내용이 ‘고객 위탁 가상자산의 회계처리’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두나무·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 등 5대 가상자산거래소에 고객들이 위탁한 가상자산 규모는 작년말 기준 18조3067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일관된 명확한 회계처리가 없다 보니 같은 자산을 놓고 표기가 들쑥날쑥했다.
관련해 금융위는 “사적계약, 법률, 관리·보관 수준 등 고객과 사업자의 ‘경제적 통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판단해 자산·부채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자산·부채 규모는 대외 공표될 경우 중요한 경영지표인데, 금융위가 제시한 ‘경제적 통제’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라며 “오늘 발표만 봐서는 어떻게 회계처리를 해야 할지 솔직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주석공시 의무화의 경우에는 가상자산에 대한 ‘시장가치 정보’를 어떻게 표기할지가 모호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식처럼 종가가 없는 24시간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장가치를 못박아서 제시할 순 없다”며 “회계법인과 협의해 가장 신뢰 있는 거래소의 신뢰 있는 가격을 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들 자사 거래소가 가장 신뢰 있다고 하는 판국인데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나”고 반문했다.
가상자산 사각지대 해소도 난제다. 이번에 발표된 회계처리 감독지침·주석공시 의무화는 외부감사법(외감법) 대상 법인만 적용된다. 외감법 시행령(제5조)에 따르면 외감법 대상 법인은 직전 사업연도의 매출액이 500억원 이상인 회사 등이다. 그런데 그동안 코인 먹튀·사기 논란이 불거진 가상자산 사업자 상당수는 매출액 500억원 미만인 소규모 사업자다. 이번에 회계 투명성을 강화해도 이같은 소규모 사업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셈이다.
그렇다고 외감법 대상 가상자산 법인의 회계 문제도 모두 포착될지도 불투명하다. 가상자산 전문가인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는 “사업자가 블록체인상에서 실제 유통한 가상자산 물량과 공시한 물량이 맞는지 실시간 검증하는 IT 인프라가 없는 실정”이라며 “이대로 가면 올 하반기에 제도를 시행해도 허위공시를 제때 못잡는 속빈 강정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두고 금융위는 “외부감사인이 문제가 되는 것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IT 시스템 없이 덜컥 시행했다가 문제가 터지면 회계법인만 독박 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해외 가상자산 사업자는 회계처리 감독지침·주석공시 의무화에 무풍지대”라며 “우리나라 사업자에만 규제 부담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미국·일본을 제외하면 가상자산 회계·공시를 전격 도입한 나라는 없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 지침은 현재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우려가 없도록 향후 2개월간 설명회 과정에서 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투자는 계속되는데 국제회계기준(IFRS) 제정 논의는 늦어지는 상황에서, 유권해석 성격의 감독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현재 최선의 대안”이라며 “감독 사각지대 해소 방안, 공시를 검증하는 실시간 IT 인프라 도입 방안 등을 향후 여론수렴 과정에서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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