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숨은영웅] 노병은 대지진 때 '형제의나라' 구호대에 "내 아들들" 외쳤다

조성흠 2023. 7. 1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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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넘나든 운전병' 튀르키예 참전용사…"내 노력 헛되지 않아, 한국인 자랑스러워"
"처참했던 한국, 발전상에 너무나 놀라…생전에 한번더 가보는 게 소원"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 (이스탄불=연합뉴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josh@yna.co.kr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늦은 오후 집 앞 의자에 앉아있던 백발 노인은 멀리서 걸어오는 취재진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지난달 30일(5.30) 튀르키예 이스탄불 외곽 지역 카으타네 주택가에서 만난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씨는 92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조금 굽었을 뿐 손아귀와 목소리에서 여전히 힘이 느껴졌다.

넥타이와 함께 깔끔하게 차려 입은 남색 정장에는 한국 정부에서 참전용사에게 수여한 메달 2개가 달려 있었다.

카라만씨의 안내로 들어선 집 안에서는 부인과 아들이 함께 취재진을 맞았다.

거실 한 쪽 벽에는 젊은 시절 군복을 입은 카라만 씨와 부인의 사진이 있었고, 다른 쪽 벽에는 최근 한국 방문 당시 찍은 참전용사 기록용 사진이 걸려 있었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 (이스탄불=연합뉴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josh@yna.co.kr

짧게 사진 설명을 한 뒤 자리에 앉은 카라만 씨는 70년 전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겪은 전쟁의 참상을 떠올렸다.

1951년 말 튀르키예에서 군 전역을 앞두고 있던 카라만 씨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할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전우들과 함께 자원했다고 한다.

이즈미르항에서 출항한 지 22일 만에 부산항에 내린 카라만 씨는 운전병으로서 부산과 전방을 오가며 군수 물자를 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한 번은 무기고에서 탄약 상자 125개를 싣고 강원도 홍천강을 건너던 다리 위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고 한다.

전장에서 불과 5∼6㎞ 떨어진 곳이어서 북한군에 발견될 경우 공격에 무방비인 상태가 된 것이다.

게다가 다리 위에서 차가 멈췄기 때문에 차가 파괴되기라도 하면 자칫 전방으로의 보급로가 완전히 막힐 수도 있었다.

카라만 씨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몸을 숨길 곳을 찾았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구덩이에 들어가 지원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차량 운전병이 여분의 타이어를 가지고 와 천신만고 끝에 탄약 전달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온몸이 진흙 투성이가 된 운전병이 탄약 상자를 가지고 온 것을 본 당시 전투부대 지휘관이 그를 안아주며 "이 전쟁은 너희가 다 책임지고 있다"고 격려해준 것을 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는 항상 죽을 위기가 있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며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내 임무를 다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 (이스탄불=연합뉴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josh@yna.co.kr

카라만 씨가 기억하는 당시의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모습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는 "부모 없는 아이들, 남편을 잃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때 본 처참한 모습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7살 어린이부터 70살 노인까지 전투에 참여했고 불쌍한 여자들이 어떻게든 버티려고 악착같이 일해야만 했다"며 "전쟁만큼 나쁜 것은 없다. 다시는 그런 전쟁이 벌어져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전쟁의 참상이 눈앞에 선한 듯 카라만 씨는 주먹을 쥔 채 목소리를 떨었고, 휴지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 (이스탄불=연합뉴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josh@yna.co.kr

카라만 씨는 그렇게 어려웠던 한국이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이룬 데 대서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수 년 전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왔다는 카라만 씨는 "너무나도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과거 한국은 서울과 부산 외에는 도시 비슷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판잣집에 1, 2층짜리 집들뿐이었다"며 "이제는 어딜 가나 높은 빌딩이 수두룩할 정도로 굉장히 발전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가 노력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인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큰 발전을 이뤄낸 한국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아직도 뉴스에서 한국 소식을 접하면 자신의 일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아들 이스메트 카라만 씨는 지난 2월 튀르키예 동남부 대지진 당시 뉴스에서 한국 구호대의 도착 사실이 보도되자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서 "이것 보라. 한국인들이 왔다. 내 아들들이다"라고 외쳤다고 했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 (이스탄불=연합뉴스) 튀르키예 참전용사 무히틴 카라만 옹이 연합뉴스와 인터뷰 후 거수경례하고 있다. josh@yna.co.kr

카라만 씨는 기회가 된다면 더 늦기 전에 한국을 한번 더 방문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번 한국 방문 때 가는 곳마다 한국인들이 나는 물론 동행한 손자까지 환대해준 것을 잊을 수 없다"며 "나는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운 것을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젊은 한국인들에게 전쟁이 뭔지,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뭔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취재진이 굳이 나올 필요가 없다고 사양했지만, 카라만 씨는 오랜만의 한국 손님이 떠나는 게 아쉬운 듯 문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92세의 노병은 떠나는 취재진을 향해 거수경례와 함께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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