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남조선’ 아니고 ‘대한민국’…北 김여정, 표현 바꾼 속내는

김예진 2023. 7. 1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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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문서에 첫 한국명 표기
김여정, 담화 때 입에 올려 주목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등 사용
“美 공군 EEZ 무단 침범 지속 땐
위태로운 비행 경험할 것” 위협
현정은 방북 거부 입장 발표 당시
첫 등장 ‘외무성 김성일’ 파악 안 돼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시라며 미군 공중정찰을 겨냥한 대응을 예고했다. 또 당국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입장문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란 국명을 썼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11일 담화에서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북측 배타적경제수역(EEZ) 상공을 무단 침범했다며 “위임에 따라 우리 군의 대응 행동을 이미 예고했다”고 밝혔다. 향후 있을 군사적 대응은 김 총비서의 뜻이란 의미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침범 시 미군이 매우 위태로운 비행을 경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연합뉴스
북한은 전날부터 이틀간 김 부부장과 국방성 대변인 명의 담화를 총 3건 냈다. 이달 2∼9일 미 공군 전략정찰기와 무인정찰기 활동 중 동해상에서 몇 차례 영공 수십㎞를 침범했다는 주장 그리고 10일 북한 EEZ 상공을 총 8차례 침범했다는 주장을 폈다.

EEZ는 사실상 영해이나 국제법에 따라 상공 비행은 가능하다. 그런데도 북한이 극렬히 반발하는 건 이번 정찰 활동이 김 총비서 신변을 위협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미 전략정찰기와 무인정찰기가 (…) 우리의 전략적 종심지역에 대한 도발적인 공중 정탐행위”를 벌였다는 국방성 대변인 담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우리 군이 북한 주장을 ‘사실무근’으로 규정한 데 대해 북한은 “우리 군과 미군 사이의 문제”라며 “‘대한민국’의 군부 깡패들은 주제넘게 놀지 말고 당장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막말도 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도발 명분을 축적한다고 볼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북한이 공식 입장에서 대한민국이란 표현을 쓴 건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 부부장의 전날 심야 담화에는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들’ 등 문구가 들어갔다. 북한은 일반적으로 남측, 남쪽, 남조선 등을 쓴다.
11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U-2S 고공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공식 발표에서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지칭한 적은 없었던 걸로 확인된다”며 “다만 국제경기 대회 때나 남북회담 중, 제3자 발언 및 언론을 인용할 경우에 대한민국이라는 표기를 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북한의 의도와 향후 태도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예의 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한,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 운운하는 것은 최근 북한이 보이는 2국가(‘투 코리아’) 체제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제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일반적 국가 관계로 보겠다는 것으로, 투 코리아 경향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북한은 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 거부 입장을 담은 대남 메시지를 통일전선부나 통전부와 연관된 대남기구 대신 외무성을 통해 내놓았다. 당시 입장 발표에 쓰인 명의는 ‘외무성 김성일 국장’으로 표기됐다. 외무성에는 아시아1국, 아시아2국, 유럽 담당 등 여러 부서가 있는데 ‘김성일’의 부서나 역할은 표기되지 않았다. 통일정보 포털에 따르면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 김성일’이라는 인물의 존재가 확인되지만, 동일인인지 알 수는 없다.

정부 관계자는 김성일이 외무성 내 아시아 담당일지, 아니면 대한민국 담당이 신설된 것인지 등에 대해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북한에서 ‘김성일’이라는 이름은 흔하고 동명이인이 많아 현 단계에서 추정이 쉽지 않다는 설명도 내놨다.

일련의 상황은 북한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서 남북관계 규정을 폐기하고 앞으로 남측을 ‘외국’으로 대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이 공표한 정비례 원칙을 군사적 차원을 넘어 전 분야로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통일부 장·차관을 모두 부내 인사가 아닌 ‘외교통’으로 내정 또는 임명하며 통일부의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이는 통일부 위상 추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평소 ‘북한 체제 붕괴 후 주민이 원할 시 남한이 흡수해 주는 통일’을 주장해 온 ‘조건부 흡수통일론자’다.

김예진·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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