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인권 바닥"…'아이돌 팬 대접'의 현재
속옷 검사, 특정 신체 부위 접촉 있었다는 폭로 나와
하이브, 녹음기 등 기기 반입 막기 위한 '보안 바디 체크' 있었다고 시인
옷 속에 손 넣거나 옷을 직접 올리는 행위 없었다며 팬들 주장 과장됐다는 입장
사실상 '잠재적 가해자'로 의심하고 팬 통제한다는 지적…"고압적" "소속사 갑질"
지난 주말, K팝 팬들을 들끓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이브 소속 보이그룹 앤팀(&TEAM) 팬 사인회에 다녀왔다는 일부 팬들은 갑작스럽게 몸수색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트위터 글을 통해 폭로했다. 가슴을 만지거나 누르고 속옷 검사를 당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팬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겠다' '성희롱 아니냐' '팬들은 인권도 없나' 등의 질타가 쏟아지자, 팬 사인회 주최 측인 위버스샵은 공식입장을 내어 해명에 나섰다.
"녹음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곤란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녹음과 촬영이 가능한 전자장비의 반입을 엄격하게 제한해 왔"으나 8일 열린 앤팀 팬 사인회에서는 "전자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여 이를 확인하는 보안 바디 체크가 여성 보안요원에 의해 진행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하신 팬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드리게 되었다"라는 게 핵심이다.
위버스샵은 "아무리 보안상의 이유라고 해도, 그것이 팬분들을 불편하게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앞으로 보안 목적의 검색에 비접촉 방식을 도입하는 등 개선안을 준비하고, 좀 더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아티스트와의 팬 사인회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알렸다.
허용 금지된 전자기기를 반입한 팬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안 바디 체크'가 있었다는 해명.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포함한 몸수색의 원인을 팬들에게 돌리는 듯한 내용에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이브는 다시 한번 수습에 나서, 현장 외주 운영사의 여성 보안 요원이 '잠시 터치하겠습니다'라며 손등으로 전자기기 의심 위치를 대략 체크하고 팬 스스로 기기를 제거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옷 속에 손을 넣거나 팬의 옷을 직접 올리는 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녹음이나 촬영을 하지 못하도록 관련 기기 반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콘서트, 팬 미팅, 공개방송 등에서 이전부터 이루어져 온 일이다. 이번 일은 당사자인 팬이 소속사의 제지 행위를 '성추행' 혹은 '인권 침해'라고 인식할 만큼 반발이 컸다는 것이 특징이다.
앤팀의 팬 사인회에서 일어난 '보안 바디 체크'가 일반적인 일일까. 엔터업계 관계자 A씨는 "회사 입장에서는 촬영이나 녹음으로 벌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방침을 세운다"라며 "회사마다, 또 같은 회사여도 아티스트마다 팬 사인회 방침이 너무나 다 다르다. 그래서 이번 사례가 일반적이라거나 반대로 이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기획사는 아티스트 보호를 위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팬들을 통제하는 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팬들은 아이돌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온 자리에서 최소한의 인격적인 대우를 받길 원한다. 결국 서로 '어느 정도'를 양보하고 감수해야 하는지를 두고 충돌할 때, 어떻게 합의에 도달할지가 관건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획사와 팬의 위치가 수평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팬 행사를 주최하는 권한은 대부분 소속사에 있고, 팬들은 소속사가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야 하는 게 기본이다. 이번 앤팀 팬 사인회 사안은 소속사가 '문제 행위를 할 만한 가능성'에만 몰두해 팬들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도 저버렸다는 비판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보이그룹 팬으로 과거 팬 사인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B씨는 최근 팬 사인회를 위해 들이는 지출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B씨는 "요즘에는 '팬싸컷'(팬 사인회 당첨이 가능한 앨범 구매 수량)을 맞추기 위해 이 정보 자체를 돈으로 산다. 앨범 판매량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서 비용 리스크가 커지니 저런 추가 지출까지 하는 것"이라며 "당연히 그 만남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을 텐데 기록 하나 못 남기는 건 너무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아티스트의 말실수를 우려해 팬을 단속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B씨는 "아티스트 입단속에 자신이 없으니 100명도 안 되는 팬을 잡는 건가? 많으면 수백만 원을 쓰고 온 고객한테 이렇게 할 수 있는 산업이 있나 모르겠다"라며 "불확실한 염려로 소비자 인권을 침해하고는, (소속사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거면 팬 사인회에 오지 말라는 심보다. 갑질 그 자체"라고 바라봤다.
'문화산업의 노동구조와 아이돌' 등 아이돌 관련 문화 연구를 지속해 온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도 팬들이 일종의 '관문'을 통과해 팬 사인회에 입성했다는 점을 짚었다. 이 이사는 "팬 사인회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돌과 대화를 나눌 기회라는 점에서 팬들에게 중요하다. 음반을 구매해 참여 자격 조건을 얻는 등 복잡한 과정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아이돌을 보호하는 것은 기획사의 중대한 책무이지만 팬들의 반응과 의견을 수용하는 것 역시 소속사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며 "아이돌과 팬의 사적 대화 노출 우려가 있었다 해도, 효율성만을 고려해 몸수색 등을 진행한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팬들을 이른바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고 억압하려고 하면, 팬들도 등을 돌리게 되지 않을까. 정확한 사실 확인은 물론 문제 개선을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박희아 대중문화 저널리스트는 "소속사가 그동안 팬들의 녹음 등 행위로 인해 아이돌이나 회사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할 순 있다. 단, 그 피해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밝히거나,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시키려는 자체적인 노력은 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의 심리를 인지하고 물리적·정신적으로 팬들을 구속하는 것, 특히나 신체검사는 큰 고민 없이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이다. 다분히 소속사 중심적인 생각이고, 문제에 대한 방어라기보다는 팬들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미묘 음악평론가는 "(여러 팬 행사) 현장에서 소속사 등 주최 측이 팬들을 고객보다는 '통제 대상'이나 '잠재적 문제 요인'으로 간주한다는 인상을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받아온 게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업계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팬들이 꾸준히 반발해 왔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팬들을 박대한다는 인상이 강해지는 것도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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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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