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의 세계]ⓛ 아스파탐 ‘제2의 사카린’ 될까… 대체당 잔혹사
[편집자주] 한국 정부가 사용 승인한 감미료 22중 중 아스파탐이 논란에 섰다. ‘제로’ 열풍에 힘입어 설탕을 대체하는 감미료가 영토를 넓혀가다가 유해성 논란에 직면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아스타팜을 비롯한 인공감미료가 과연 안전한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4회에 걸쳐 아스파탐 논란과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아스파탐은 정말 ‘위험한 단맛’일까.
설탕의 200배 단맛을 내는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이 오는 14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의해 ‘발암 가능 물질’(2B군)로 분류될 전망이다.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식품업체의 사랑을 받던 아스파탐이었다. 극소량으로도 단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제로(설탕이 없는)’ 음료들과 막걸리, 과자류 등에 널리 쓰였다.
하지만 지난달 외신에서 아스파탐이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될 것이란 보도가 나온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국내 식품회사들과 주류회사들은 ‘아스파탐 손절’에 나섰다. 오리온과 크라운제과는 자사 과자들에 들어간 아스파탐을 다른 재료로 대체하겠다고 했고, 막걸리 회사들은 ‘무(無) 아스파탐’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식품회사들의 발빠른 움직임과는 달리 식품·화학 전문가들은 아스파탐의 유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스파탐을 얼마나 먹어야 인체에 유해한 수준에 오르는 지 등에 대해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아스파탐이 40년 전 유해성 논란으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인공감미료 사카린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되는 것만으로도 ‘유해 물질’이란 오명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아스파탐 안전하다” ‘발암 가능 물질 지정’에 묻힌 목소리들
전문가들은 아스파탐의 위험성이 과도하다고 평가한다. ‘발암물질 지정’이라는 구호에 가려져 소비자들이나 식품업계가 과도한 공포에 휩싸여있다는 뜻이다.
당장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 식품첨가물 기준규격 재평가 최종 보고서를 인용해 국민의 아스파탐 섭취 수준이 일일섭취허용량(ADI) 대비 0.12% 수준이라고 했다.
현재 권장량은 60㎏ 성인 기준 1일 최대 2.4g인데, 이는 막걸리 33병, 제로콜라 55캔을 한꺼번에 먹는 수치와 비슷하다. 과학적으로 크게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유엔 산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도 이미 아스파탐에 대해 1980년에 안전성을 인정하면서 일일 허용량(체중 1㎏당 40 이하)을 제시한 적이 있다.
발암물질 분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스파탐이 속할 인체발암 가능 물질 2B군은 IARC가 1970년대부터 전 세계의 역학조사 자료를 근거로 발암물질을 조사해 위험 정도와 밝혀진 관계에 따라 나눈 4개의 등급 중 하나다.
아스파탐이 속할 2B군엔 김치, 피클 같은 절임 채소류나, 알로에 베라 등이 포함돼 있다. 암연구소는 지난 1990년대에 커피를 2B군으로 분류했다가 2016년 제외하기도 했다. 아스파탐이 위험하다면 김치와 피클, 커피도 위험하다는 논리가 가능하단 뜻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IARC는 발암물질을 ‘1군’(발암 물질), ‘2A군’(발암 추정 물질), ‘2B’(발암 가능 물질), ‘3군’(발암 비분류 물질), ‘4군’(비인체발암물질)으로 분류하는데, 2A군과 2B의 차이는 동물 실험은 어느 정도 진행된 게 있고 2B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라면서 “2A군에 속한 음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 많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2A군엔 후라이드 치킨, 감자튀김 등 튀긴 음식도 있다. 고온의 기름에서 조리돼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이유에서다. 치킨과 맥주가 생활인 현대인의 삶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매일 발암물질을 먹고 있는 셈이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2B군 분류는 이 물질이 암을 유발한다는 게 아니라, 문제 제기가 있으니 전문가들이 더 연구해보라는 경고성 조치로 봐야할 뿐”이라며 “독소가 아예 없는 식품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 아스파탐과 사카린의 꼭 닮은 탄생사와 잔혹사
식품업계에서 아스파탐을 재빨리 대체하겠다고 밝힌 것은 논의 양상이 사카린 당시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스파탐과 사카린은 탄생사부터 잔혹사까지 공통점이 많다.
일단 둘 다 모두 실험실에서 유래됐다. 사카린은 지난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화학 교수를 지낸 아이라 램슨과 제자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발견했다. 가장 먼저 대체당으로 널리 알려진 물질이다.
이후 1899년 독일에서 처음 사카린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고, 전 세계에서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 두루 사용했다. 설탕보다 단데도 열량도 없고, 저렴했기 때문이다. 한때 수요가 많아 1960년대에는 삼성이 밀수까지 하면서 사카린을 국내로 들여오다 발각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잘 나가던 사카린을 매장시킨 건 지난 1977년 캐나다에서 나온 한 연구 결과다. ‘사카린을 투여한 쥐가 방광암에 걸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일일 섭취 허용량의 500배에 달하는 사카린을 쥐에 투여하는 등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진행된 실험이었다.
미국 의회는 논란이 커지자 사카린을 계속 사용하되 “이 제품의 사용은 당신의 건강에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 제품은 동물실험 결과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결정된 사카린을 함유하고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표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스파탐도 비슷하다. 1965년 아스파탐은 미국 화학자 제임스 슐레터가 발견했고 이번 아스파탐 논란도 지난해 3월 프랑스에서 나온 한 연구 결과에서 비롯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에 걸린 사람들을 추적 조사했는데, 평소 많은 양의 아스파탐을 섭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병 위험이 10~15% 높았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는 “IARC는 이 연구를 근거로 발암 물질 2B군으로 지정하려 하는 것인데 이 연구 결과만으로 아스파탐을 발암물질로 치부하기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 ‘암 유발’ 누명 벗었지만 명예 회복 못한 사카린
사카린은 뒤늦게 암 유발 물질이라는 누명을 벗었지만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 이후였다. 허울 뿐인 명예회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논란인 아스파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애런 캐롤 인디애나 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는 ‘인공 감미료가 설탕보다 낫다는 증거’라는 기사를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실었다. 그는 “방광암과 사카린의 연관성은 사람에게서 확인된 적이 없었다”고 적었다.
1977년 연구 이후 독성연구프로그램(NTP)과 IARC 등에서 오랜 기간 들여다 봤지만 결국 사카린의 독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1995년 유럽식품안전청(EFSA) 재평가 결과 “캐나다의 실험은 오류이며, 사카린나트륨은 인체에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후 2000년 IARC는 발암물질 목록에서 제외했다. 같은 해, 미국 의회는 사카린에 대해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했던 법안을 철회했다. 그 다음해인 2001년 미국 식품의약청이 사카린을 안전한 물질로 인정했다. 2010년 12월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은 사카린을 ‘인간 유해 우려 물질’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이번 아스파탐 유해 논란도 사카린처럼 순간적인 공포 여론이 조성되는 등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상도 교수는 “IARC의 분류는 발암성의 심각도, 정도로 나눈 게 아니라 연구 자료가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스파탐 이전에 IARC 분류로 파장이 컸던 대표적인 사례가 가공육 1군 분류다. 지난 2015년 IARC는 가공육을 흡연, 술과 같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기도 했다.
가공육 과잉 섭취로 인한 암 사망자 수보다 흡연으로 인한 암 사망자 수가 수십배는 많지만, 1군에 분류돼 같은 위험도가 있는 것으로 오인됐다. 매일 가공육을 50g씩 먹으면 대장암 발생 위험이 18% 증가한다는 건데, 매일 가공육을 먹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덕환 교수는 “대체 감미료는 당뇨 환자들이 단 것을 찾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자, 기적의 식품인데 이런 논의 없이 ‘발암 가능 물질’이라는 단어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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