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라인’ 살아나도 정부는 ‘예타’ 건너뛴다
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땐
거리·공사방식까지 바뀌어
사실상 ‘다른 사업’에 해당
법령엔 ‘일정액 늘면 재조사’
국토부 “증액 비율 안 넘어”
“이럴 거면…” 예타 무용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이 강상면 종점으로 재추진되더라도 해당 노선에 대한 별도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는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대안으로 제시된 강상면 종점은 예타 통과 구간인 양서면 종점과 한참 떨어진 데다 공사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사실상 다른 사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예타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예타를 면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만약 대안구간으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별도 예타를 다시 하지 않고 (곧바로) 타당성 조사로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럴 거면 굳이 예타를 할 이유가 없다”며 ‘예타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시행령에 따르면 기존 예타 사업에서 정한 사업비보다 일정액이 증가하면 예타를 다시 하게 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의 경우 시행령이 정한 금액을 넘지 않는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시행령을 보면 ‘물가인상분 및 공익사업의 시행에 필요한 토지 등의 손실보상비 증가분을 제외한 총사업비가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확정된 총사업비 대비 100분의 10부터 100분의 20까지 증가한 사업’의 경우 예타를 다시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토부가 제시한 대안노선의 사업비 증액분은 140억원으로 기존 예타안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친다. 시작 부분에서 하남시 감일보금자리 터널 연장 및 상사창 나들목(IC) 위치 변경 등으로 사업비가 820억원 늘어나지만 해당 사업은 시행령이 정한 증액비율을 넘어서지 않아 예타 재실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실상 예타안과 달리 대안노선은 별도의 경제성·정책적 분석 없이 구간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국토부는 현재 예타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예타를 마친 전국 고속도로 24건 중 14건이 시작점 또는 종점이 변경됐다는 것을 이번 강상면 종점 변경 가능 근거로 들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타 사업구간(양서면 종점)은 기존의 법정 상위계획인 국토종합계획에 이미 반영돼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사업구간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정말 정밀하게 도로망을 분석해서 예타를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구간이 있으면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토부가 예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 분야 전문가는 “예타는 추상적인 큰 그림이고, 타당성 조사에서 디테일하게 따진다는 국토부 설명은 잘못된 것”이라며 “예타도 상당히 디테일하게 진행하고, 민감도 분석 등을 거쳐서 편익을 엄격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예타 허들을 통과했다는 건 그 구간이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예타를 도입한 취지가 사전에 경제성 분석, 정책 분석, 투자 우선순위, 재원조달 방법 등 사업 타당성을 검토한 다음에 본사업에 들어가라는 것인데 정부가 앞서서 예타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류인하·윤지원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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