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이들'과 '저출산 희망벨'[광화문]
지난달 21일.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단 뉴스가 나올 때만 해도 일어나선 안될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다고만 생각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살해한 뒤 오랜 기간 유기해온 친모의 사이코패스적 행동에 충격을 받았지만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살인마들을 떠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비정한 생모에 대한 비난과 분노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추는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했다.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임시신생아번호'로만 존재하는 아동들, 이른바 '사라진 아이들'과 '유령 아동'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바로 다음날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2015년부터 8년간 이같이 출생 미신고된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위험도가 높은 23명을 조사해 최소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유기된 사실을 확인했고, 수원시 영아 살해 사건도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사례라고 밝혔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출생한 아동이 태어난 이후 우리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에 대해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즉각 사과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관련 행보도 빨라졌다. 여성이 낳은 아이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다. 의료기관이 직접 아동의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산정보시스템에 등록하는 출생통보제는 국회에 계류돼있던 법안이 통과되면서 내년 7월 시행을 앞두게 됐다.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된 아동을 국가가 관리하는 보호출산제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복지부는 위기아동 발굴을 위해 운영 중인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아동이 포함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을 추진키로 했다.
눈을 돌려보면 '사라진 아이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아기 울음'을 되찾는 일도 시급하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인구동향'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4월 출생아 수는 1만8484명으로 전년 동월(2만1165명) 대비 12.7%(2681명) 줄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을 기준으로 출생아 수가 2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1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전체 월별로 보면 역대 3번째로 적은 수준이다. 그간 최저 출생아 수는 지난해 12월에 집계된 1만6803명이었다. 월 기준 출생아 수는 2015년 12월부터 89개월째 전년 동월 대비 감소 추세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올 들어서도 1분기(1~3월)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지난해 1분기 0.87명)를 갈아치웠다. 합계출산율의 경우 2019년 1분기(1.02명)를 끝으로 16개 분기 연속 1명을 밑돌고 있다.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경향을 감안하면 올 하반기 합계출산율 반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머니투데이가 올해 창간 22주년을 맞아 '아이(童)를 낳고 기르기 위한 특단의 발상(Think)'인 '띵동(Think童) 프로젝트'를 절박한 심정으로 제안한 이유다. '1등 초저출산 국가'란 예고된 재앙을 넘어 '인구소멸'이란 불안한 미래로 달려가는 대한민국호를 멈춰 세우고,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기업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는게 절실해졌다. 이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축복'으로 바꿔줄 저출산 희망벨 '띵동'이 곳곳에 울리도록 온 힘을 모을 때다. 이것이 '2236명'과 '1만8484명', 두 숫자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과제를 풀어낼 해법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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