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주머니에 들어가는 양자 컴퓨터 시대 올 것" 꿈의 컴퓨터 만드는 김정상 아이온큐 공동 창업자
윤 대통령에게 양자 컴퓨터 설명하고 정부와 9월부터 전문 인력 양성
컴퓨터의 미래로 꼽히는 양자 컴퓨터는 꿈의 컴퓨터다. 슈퍼 컴퓨터가 1만 년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적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양자 컴퓨터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이 틈에서 국내 석학이 공동 창업한 미국 신생기업(스타트업)이 벌써 세 번째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주인공은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김정상(54) 미국 듀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크리스토퍼 먼로 미국 메릴랜드대 물리학 교수와 2015년 공동 창업한 아이온큐다.
칼리지파크에 본사를 둔 아이온큐는 2021년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기업가치는 지난 7일 종가 기준으로 약 3조5,000억 원.
기술총괄(CTO)을 맡아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기업)이 된 아이온큐를 이끄는 김 교수를 서울 역삼동 최종현학술원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양자기술 전시회 '퀀텀코리아 2023' 참석차 잠시 방한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양자 컴퓨터에 대해 설명하고 정부와 인력 육성방안을 논의했다.
벤처투자사의 물리학도가 창업 제의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1992년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단일광자 빔 발생장치 연구'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되며 양자 컴퓨터 개발의 근간이 됐다. 덕분에 그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대학원 졸업 후 그는 미국 벨연구소에 들어가 5년간 통신기술을 연구했고 2004년 듀크대 교수로 옮기며 상용화 가능한 미래 기술을 고민하다가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먼로 교수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먼로 교수는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양자컴퓨팅을 최초로 실험한 학자죠. 연구 분야가 서로 보완 관계여서 2000년대 중반부터 공동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때 특이한 인연을 만났다. "먼로 교수의 제자가 물리학을 전공하고 벤처투자사에서 일하다가 우리의 논문을 읽고 같이 회사를 만들라고 제안했어요. 이를 계기로 아이온큐를 공동 창업했죠."
불가능에 도전하는 양자 컴퓨터의 두 가지 초능력
김 교수는 양자 컴퓨터를 "두 가지 초능력을 지닌 컴퓨터"로 소개했다. 두 가지 초능력이란 중첩과 얽힘 현상이다.
기존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비트 값 중 하나를 선택해 결과를 만든다. 그런데 양자 컴퓨터는 0과 1이 겹치는 것도 표현할 수 있다. 0과 1의 성질을 함께 갖는 이 값을 중첩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의 두 번째 초능력인 얽힘 현상은 여러 경우의 수가 내부적으로 연결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전 두 개를 던졌을 때 하나가 앞면이 나오면 나머지도 무조건 앞면이 나오는 현상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 물리학의 얽힘 현상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사후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입증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 주제도 얽힘 현상이다. "중첩과 얽힘 현상을 적절히 이용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빠르게 처리해 기존 컴퓨터에서 불가능한 문제를 풀 수 있어요."
희토류 이테르븀으로 작동
양자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를 이용하거나 반도체 제조 기술로 양자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온큐는 희토류 이테르븀의 원자를 이용해 '이온 트랩'이라는 장치를 만드는 독보적 기술을 개발했다. 이테르븀은 희토류이지만 작은 조각으로 양자 컴퓨터를 가동할 수 있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해도 지장 없다. "동위원소 171을 사용하는 이테르븀은 바늘 끝 만한 조각으로 양자 컴퓨터에 필요한 30, 40개 원자를 제공해요. 이테르븀은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나오죠."
반면 다른 업체들의 반도체 기술로 양자를 만드는 방법은 극저온을 유지해야 작동한다. 따라서 일반 상온에서 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양자는 주변 환경에 민감해요. 완전 고립되지 않으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중첩과 얽힘 현상이 흐트러져요. 그래서 반도체 기술로 만든 양자 컴퓨터는 전자회로가 간섭을 덜 받는 극저온 상태가 필요해요. 이렇게 되면 극저온 장치 때문에 양자 컴퓨터의 크기를 줄일 수 없죠."
김 교수는 진공 용기에 이테르븀 원자를 가두는 기술로 저온뿐 아니라 상온에서도 양자가 잘 작동하도록 했다. 더불어 크기도 줄였다. 김 교수가 보여준 자체 개발한 이테르븀 진공 용기는 가로, 세로 3, 4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상자다. 들어보니 묵직했다. "표면에 보이는 나비 넥타이 모양의 회로 한복판에 원자가 있죠. 이를 더 작게 만드는 기술을 연구 중이죠. 크기를 줄이면 비용도 낮출 수 있어요."
"구글과 IBM 양자 컴퓨터보다 성능 앞서"
아이온큐가 내놓은 양자 컴퓨터는 '하모니', '아리아', '포르테' 등 총 3종이다. 2018년 개발된 하모니는 2020년부터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된다. 양자 컴퓨터를 설치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20년부터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서비스로 양자 컴퓨터를 제공해요."
기능이 개선된 아리아는 지난해, 최신형 포르테는 지난달 말 공개됐다. "포르테는 현대자동차 등 제휴사들만 우리가 운영하는 폐쇄형 클라우드로 접속해 이용해요. 구독형 서비스 제공 방안은 아직 미정입니다."
아이온큐의 양자 컴퓨터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구글이 2019년 공개한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의 처리 능력은 53큐비트(양자 컴퓨터의 성능 표시 단위)다. 구글은 시커모어가 슈퍼 컴퓨터에서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200초 만에 풀었다고 발표했다. IBM은 지난해 433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프로세서 '오스프리'를 내놓았다. 아이온큐의 포르테는 발표 수치가 이들보다 낮은 29~32큐비트다.
그러나 김 교수는 미국 양자컴퓨팅산업선도기업연합(QED-C) 성능 평가 등에서 아이온큐가 가장 앞섰다고 주장했다. "양자 컴퓨터는 논리 게이트를 그때그때 만들어 양자 정보를 계속 이동시켜야 해요. 다른 업체들의 양자 컴퓨터는 논리 게이트를 바로 만들 수 없어 오류가 쌓이죠. 이렇게 되면 큐비트가 수백 단위여도 10큐비트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
구글, 아마존, 삼성, 현대 등 투자
현재 아이온큐의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는 곳은 현대자동차, 유럽 비행기 제조사 에어버스, 미국 GE 연구소와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등이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기술을, 에어버스는 항공기에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방법론을 양자 컴퓨터로 연구 중이에요. 이밖에 많은 해외 기업들과 양자 컴퓨터 이용을 논의 중이죠."
덕분에 매출이 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10만 달러(약 145억 원)를 기록했다. 지난 5월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에서 매출은 430만 달러(약 56억 원)로 전년 동기(200만 달러)보다 2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전체 매출은 1,840만 달러(약 240억 원) 이상을 기대한다. 수익은 아직 투자 단계여서 지난해 4,850만 달러(약 631억 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직원 260명 가운데 70%가 개발자다. "실적이 상장할 때 예상치보다 잘 나오고 있어요."
투자는 구글벤처스, 아마존웹서비스, 현대자동차, 삼성캐피털리스트펀드,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캐피털 등에서 받았다. "상장 전까지 약 9,000만 달러(1,200억 원)를 투자받았고 증시 상장으로 6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어요."
9월부터 정부와 양자 인력 양성 "주머니 속 양자 컴퓨터 시대 열릴 것"
이번에 김 교수는 과기정통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내 양자 컴퓨팅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 오는 9월부터 시범 교육을 시작한다. "산업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1주일 단위의 단기 시범 교육을 시작합니다. 합숙 교육을 논의 중이죠. 강사진과 교육 내용을 모두 미국에서 도입해요. 저도 강의에 참여하죠. 반응이 좋으면 정례화할 수도 있죠."
그는 지금도 인력 양성이 늦지 않았다고 본다. "기초 연구는 우리보다 미국, 유럽이 15~20년 빨리 투자했어요. 하지만 양자 컴퓨터를 활용한 응용 연구는 국내 기업들이 뒤처지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 국내 기업들이 양자 컴퓨터 업체들과 적극 협업하면 외국보다 앞서갈 수 있죠."
그는 스마트폰처럼 작은 양자 컴퓨터 시대도 예상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는 양자 컴퓨터는 이미 나와 있어요. 저는 듀크대 연구실에서 데스크톱 크기의 양자 컴퓨터를 쓰죠. 많은 기업들이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점점 성능이 좋아지겠죠. 이렇게 되면 주머니에 양자 컴퓨터를 갖고 다닐 날이 올 겁니다."
특히 양자 컴퓨터가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 대변혁이 올 것으로 전망했다. "양자 컴퓨터와 AI가 접목하면 기존에 하지 못한 일을 할 겁니다. 그러면서 양자 컴퓨터가 상상하지 못한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겠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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