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 반복…'반지하' 괜찮을까

안다솜 2023. 7.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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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대상 주택에 개폐형 방범창 3분의1도 설치 못 해
"침수 주택 오명 붙는다" 거부하기도…"설치 의무 규정 필요"

[아이뉴스24 안다솜 기자] "반지하 주택 집주인들을 설득하곤 있는데 쉽지 않아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남의 집에 왜 참견하느냐는 투로) 심한 말을 듣고 온 직원들도 있을 정도로 개폐형 방범창 설치에 애먹는 상황입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가운데 지난해 참사가 발생한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 '개폐형 방범창' 설치 비율은 약 30%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한 반지하 주택에 개폐식 방범창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폐형 방범창은 일반 방범창과 달리 안에서 열고 닫을 수 있어 화재·침수로 출입문이 봉쇄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다.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장애인 일가족 3명이 물이 가득 들어찬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침수가 우려되는 반지하 주택에 물이 집안으로 들이치지 못하도록 '물막이판'(차수판)과 현관 등 출입문으로 나가지 못할 상황에 대비, 창문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들의 거부로 설치가 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10일 관악구 인근 반지하 주택을 살펴보니 물막이판을 설치한 반지하 주택은 몇 군데 찾아볼 수 있었으나 개폐형 방범창 설치 주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주택에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안다솜 기자]

반지하 참사가 발생했던 관악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장애인,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재해 약자가 거주하는 622가구를 대상으로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12일 관악구청에 따르면 이 중 지난해엔 반지하 거주 장애인 가구 22가구에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했고 올해엔 노인, 어린이, 기초생활수급자가 거주하는 160여 가구에 설치했다.

관악구는 오는 11월까지 대상 가구에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악구가 올해 노인, 어린이,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개폐형 방범창 설치 의향을 조사한 결과 총 857가구 중 22% 수준인 187가구의 동의를 받는 데 그쳤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물막이판과 달리 개폐형 방범창의 경우 집 안으로 들어가 설치해야 한다"며 "세입자가 있는 경우 세입자와 날짜도 맞춰야 하는 등 불편사항이 있어 집주인과 세입자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범창 설치는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설치할 수 있는데 매물을 내놓을 때 침수가구라는 오명이 붙을까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개폐형 방범창 의무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진유 경기대 스마트시티공학부 교수는 "집주인들은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하든 하지 않든 어떤 이익이 없다"며 "집주인들의 동의를 얻으려면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혜택을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혜택 또는 의무화 등의 제도 개선 없이 그냥 공공에서 필요하니 설치하라는 경우에 사람들이 협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부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성동구에선 해당 정책이 성공했다. 성동구는 침수 가구를 대상으로만 진행하지 않고 희망 세대를 받는 식으로 접근했다"며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다른 지역은 그게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동구는 침수지역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반지하 주택에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완료했다"며 "직접 신청을 받아 설치한 지역과 하지 않은 지역의 거부감도 덜하다"고 덧붙였다.

개폐형 방범창의 실효성도 지적됐다. 김 교수는 "물막이판은 집 안에 물이 들어오는 상황을 막아주는 반면 개폐형 방범창의 역할은 출입문이 막힌 경우, 탈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며 "사실상 개폐형 방범창과 물막이판을 같이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용은 이중으로 든다"고 말했다.

이어 "개폐형 방범창 하나만 설치하는 경우, 탈출은 가능하지만 집은 이미 침수가 돼서 실거주하지 못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반지하 거주민 입장에선 탈출은 하더라도 집은 침수된 후니까 물막이판과 비교해 효과는 절반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최 소장은 "우리 사회가 단기적으로는 성동구처럼 설치를 유도할 수 있다.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를 임대인들이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냥 질질 끌고 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며 "위험한 집은 세를 못 놓는 게 기본인데 현재 그와 관련한 대책이 없다. 비가 작년처럼 쏟아지면 똑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라 정부와 지자체가 근본적 해결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다솜 기자(cott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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