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뚝배기에 끓인 민물매운탕…진한 국물에 시래기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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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한벽당은 조선 초기 전주천 변에 지어진 누각이다.
민물매운탕이야 전국에 흔하지만 전주 오모가리탕이 그중 손꼽히는 이유는 깊고 진한 국물 맛 때문이다.
민물고기는 전주천 대신 인근 장성 등지에서 들여오고, 과거 갖가지 고기를 섞어 끓이던 것에서 어종별로 구분해 끓여내는 식으로 바뀌었다.
오모가리탕 국물 한술에 전주천 변 경치 한번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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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가리, ‘뚝배기’ 뜻하는 전주 사투리
메기 등 민물고기에 민물새우로 감칠맛
여느 매운탕과 달리 국물 많은 게 특징
시래기 넣어 구수함 살리고 씹는 맛 더해
전주천서 경치 즐기며 먹으니 ‘신선놀음’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한벽당은 조선 초기 전주천 변에 지어진 누각이다. 선조들은 한벽당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물을 ‘한벽청연(寒碧晴煙)’이라 부르며 전주 8경으로 꼽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신선놀음을 하려면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법. 여기서 탄생한 음식이 지금까지 전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이어져 온다.
한벽당을 마주 보는 거리에 먹자골목이 있다. 근처에 가면 메뉴를 알기도 전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천변을 따라 평상이 늘어선 모습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에 흐르는 물결을 보며 야외에서 먹는 밥은 메뉴가 무엇이든 맛있다. 이곳 대표 음식은 오모가리탕이다. 대개 음식 이름은 그 식재료에서 기인하는데, 오모가리탕만큼은 그릇에서 따왔다. 전주 사투리로 찌개나 탕을 끓일 때 쓰는 속이 깊고 둥근 뚝배기를 오모가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재료는 무엇일까. 과거엔 전주천에서 잡은 갖가지 민물고기가 그 주인공이었다. 메기·동자개(빠가사리)·쏘가리 등을 넣고 푹 곤다. 민물매운탕이야 전국에 흔하지만 전주 오모가리탕이 그중 손꼽히는 이유는 깊고 진한 국물 맛 때문이다. 대부분의 매운탕은 넓고 얕은 전골냄비에 국물이 자작하게 끓이지만, 오모가리탕은 아주 깊은 그릇에 국물을 많이 잡고 조리한다. 민물고기는 흙냄새가 난다는 걱정은 여기선 할 필요가 없다. 깨끗한 물에 사는 민물고기라 워낙 비린내가 나지 않는 데다 깻잎과 들깻가루를 넉넉히 올려 잡냄새를 없앴다. 민물새우가 들어간 국물은 감칠맛이 깊다. 시래기는 마지막 맛의 비기다. 전주에선 무청과 우거지로 만든 시래기를 푸짐하게 넣는다. 구수한 맛은 살리고 부족한 씹는 맛은 채운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영양 면에서도 궁합이 좋다.
20년 전만 해도 전주천 변을 따라 오모가리탕 전문점이 즐비했다. 이후 환경이 나빠져 물고기가 줄고, 결국 어획이 금지되면서 가게들이 하나둘 떠났다. 지금은 노포 3곳만이 자리를 지킨다. 그중 원조집이라 자부하는 ‘한벽집’은 역사가 무려 80년에 이른다. 1대 사장인 어머니의 뒤를 이어 진만택 사장(70)이 운영하고 있다. 세월이 오래된 만큼 변화가 있다. 민물고기는 전주천 대신 인근 장성 등지에서 들여오고, 과거 갖가지 고기를 섞어 끓이던 것에서 어종별로 구분해 끓여내는 식으로 바뀌었다. 오랜 단골은 맛만큼은 옛날 그대로라고 전한다. 진 사장은 “초겨울이 되면 무청과 우거지를 사다가 천일염에 절여둔다”면서 “1년 정도 묵힌 시래기만 써서 국물 맛이 개운하다”고 귀띔했다.
날이 더워지면 먹자골목 평상이 꽉 찬다. 손님은 가지각색이다. 3대가 모인 대가족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들, 인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까지.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먹는 모습만큼은 비슷하다. 오모가리탕 국물 한술에 전주천 변 경치 한번 보는 것. 시원한 자연과 함께 맛있는 향토음식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는 것만큼 좋은 피서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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