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라울 뒤피의 전기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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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에어컨 바람처럼 상쾌한 게 또 있을까.
프랑스의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가 램프의 요정 대신 '전기 요정'을 그렸다.
이듬해 열릴 파리박람회를 위해 파리 전력 공급사가 '빛과 전기'에 관한 테마 전시관을 지으면서 그 내부를 장식할 대규모 그림을 뒤피에게 의뢰했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에도 전기요금이라는 부담을 지며 그에게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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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에어컨 바람처럼 상쾌한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에어컨을 켜려면 눈치가 보인다. 눈치 보기는 절약이 몸에 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름마다 에어컨 바람 실컷 쐬며 살아보는 게 그 시절 내 소박한 소원이었다. 램프의 요정이라도 나타나 세가지 소원을 묻는다면, 난 아마 이것부터 말하고 나서 다음 소원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프랑스의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가 램프의 요정 대신 ‘전기 요정’을 그렸다. 느슨하고 자유로운 원색의 붓질을 즐겼던 뒤피는 야수파 계열의 화가인데, 파리 퐁피두센터에 소장된 그의 작품 중 130여점이 서울 영등포구의 알트원 갤러리의 ‘뒤피: 행복의 멜로디’전에서 소개되고 있다. 전기 요정은 전기로 구석구석 불이 밝혀지고 멈춤 없이 잘 돌아가는 파리의 야경을 예찬한다. 1953년에 완성한 석판화이지만, 뒤피는 이 그림을 1936년에 벽화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이듬해 열릴 파리박람회를 위해 파리 전력 공급사가 ‘빛과 전기’에 관한 테마 전시관을 지으면서 그 내부를 장식할 대규모 그림을 뒤피에게 의뢰했다.
뒤피는 프랑스를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벽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림 속에서 하늘에 몸을 띄운 희고 거대한 몸이 바로 전기에너지를 의인화한 전기 요정이다. 뒤피는 전기로 가동되는 여러 산업 시설도 그려 넣고, 전기의 발명과 관련된 인물들도 중간중간 세웠다. 전기 요정은 도시를 작동시키는 생명의 원천이다. 만일 그가 잠들면 도시 전체가 잠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에도 전기요금이라는 부담을 지며 그에게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온 주변을 뿌옇게 만들던 증기 동력이 깔끔한 전기 동력으로 대체되자, 19세기의 사람들은 전기를 예찬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박람회로 알려진 1900년 파리박람회의 주제는 ‘전기’였고, 박람회장 이름도 ‘전기 궁전’이었다. 전기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수천개 전구에 불이 켜지면, 어둠이 물러난 빛의 세상이 열린 듯했다. 사람들은 새로 시작되는 20세기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세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20세기에 온몸으로 빛을 발산하며 자신을 불태우던 전기 요정은 이제 몸을 사리며 지낸다. 친환경 의식과 에너지 고갈에 대한 대비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덜 밝고, 조금 덜 시원하게 지내자고 곳곳에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래에 대한 도시의 비전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휘황찬란한 모습이 아닌, 지속가능한 양상으로 말이다. 결국 어릴 적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 예나 지금이나 여름은 숨이 턱턱 막히게 후텁지근하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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