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동네 책방 ‘붐’에 대한 기대와 우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3. 7. 1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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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시대’ 일단 대환영… 하지만 본분은 뭔가
연예인·전직 대통령 비즈니스… 굿즈팔이·찻집·술 파는 책방?
다른 목적 위한 장식이라면 책에 대한 예의 아니지 않나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동네 책방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22 한국서점편람’에 의하면 2015년에 101곳이던 동네 서점이 2021년에는 745곳으로 증가했으며,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815곳이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서점 전체 2527곳 가운데 30% 이상을 동네 서점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2010년 전후에 시작된 동네 서점 붐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느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 풍경은 실로 격세지감이다. 언제부턴가 각종 입시 학원이 동네를 대표하는 생활 인프라가 되어버렸다. 서울은 2만4284개에 달하는 학원이 동네 분위기와 수준을 주도하고 있다. 카페 1만7026개와 편의점 8097개는 모든 동네를 서로 엇비슷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골목이란 골목은 죄다 ‘먹자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수렴 중이다. 지역 공동체 내 가장 원초적인 만남의 공간, 동네 목욕탕은 줄폐업 사태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에 책방이 돌아온다는 것은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는 것처럼 반가운 일이다.

무릇 좋은 삶이란 양서(良書)와 분리될 수 없다. 독서란 성숙한 개인의 출발이다. 독서는, 그것 없이는 누구도 살 수 없다는 점에서 호흡에 비유되기도 한다. 고전 읽기는 심호흡, 신간 읽기는 폐호흡, 신문 읽기는 피부호흡이라는 식으로 말이다(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서점이 사회적 가치를 발현하는 것은 책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점이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다.” 이는 문화혁명의 폐허를 딛고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던 중국의 호시절, 상하이의 어느 민영 서점 주인이 찌른 정곡이다(김언호, 세계서점기행).

디지털 문명 시대를 맞이하여 지식과 정보가 책을 통해서만 유통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정교해지는 온라인상 알고리즘 블랙박스로부터 도무지 헤어나오기 어려운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자발적인 지적 관심과 주체적인 문화 취향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오프라인 동네 책방의 키워드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곧 뜻밖의 발견이다. 서점 주변의 경치와 찾아갈 때의 설렘, 서점 안의 공기와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오가는 몇 마디 대화 때문이다. 요컨대 고객은 데이터가 아닌 살아있는 인격체로 존재할 수 있다.

책과 관련된 아날로그적 경험으로 말하자면 동네 책방이 확실한 비교 우위다. 서점이 대형화되고 체인화될수록 책은 문화적 큐레이션이 아닌 상업적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매대(賣臺) 운영 시스템이 그렇고 도서 추천 방식이 그렇다. 따라서 책은 창작물로서의 내적 아우라를 상실한 채 여느 상품이나 물건처럼 취급되기 일쑤다. 1980년대 이후 미국식 대형·체인 서점의 대명사였던 반스앤노블이 최근 ‘동네 책방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에는 서점 본연의 소명의식을 되찾겠다는 각성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네 책방 붐에는 기대도 크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동네 책방의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은 오히려 늘고 있다. 문체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의하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최근 1년 동안 종이 책과 전자 책, 오디오 북을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 곧 종합 독서율은 47.5%로, 2년 전 대비 8.2% 감소했다. 연간 평균 종합 독서량도 4.5권에 불과한데, 이는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다. 동네 서점의 독서 유발 효과가 별로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동네 서점의 진정성에서도 유감은 있다. 최근 동네 책방을 연 이들 가운데는 유명 출판인이나 작가, 인기 연예인이나 방송인 등, 말하자면 평범한 이웃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던 전직 대통령도 동네 책방지기가 되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도서 외적 요소나 서점 외적 측면이 동네 책방의 본분을 흐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접견용 내지 회의용 책방, 굿즈 팔이 책방, 찻집 책방, 술 파는 책방, 밥 먹는 책방, 잠자는 책방 등이 그 보기다. 다른 목적을 위해 책을 소품이나 장식 정도로 이용한다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모처럼 찾아온 ‘서점의 시대’는 일단 대환영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동네 책방 나름의 매력과 미덕에 힘입어 그것이 국가적 급선무인 독서의 대중화 및 일상화로 이어지는 일이다. 동네 책방은 대형·온라인·체인 서점과 얼마든지 경쟁하고 공존할 수 있다. 이른바 선진국은 대개 그런 식으로 독서 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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