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국내 진학 어렵다고... ‘캐리비안 의대’라니

윤상진 기자 2023. 7.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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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초등 의대반 학원들./조선일보 DB

대치동은 입시의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곳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생기고, 학종 전형의 비중이 커지고, 최근 다시 정시 비율이 높아지는 정책 변화에도 대치동은 모든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적응하고 진화해왔다.

최근 ‘헝가리 의대 준비 학원’을 찾았을 때, 국가의 교육정책보다 오히려 앞서가는 곳이 대치동임을 깨달았다. 이 학원은 10개월 과정 동안 학생들에게 헝가리 의대 입학을 위한 구술∙필기 평가를 준비해준다. 헝가리 의대는 입학 시험이 절대평가로 치러져 한국 의대보다 문턱이 낮다. 학년 승급과 졸업은 어렵지만, 졸업하면 국내 의사 국가고시를 칠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학원에서 만난 한 학생은 “3수를 하며 명문대에 갈 성적을 받았지만, 의대에 미련이 남아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 해 100명 정도의 한국인 학생이 헝가리 의대로 떠난다고 한다.

의대 유학의 시작은 필리핀과 미국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의대 인기가 급상승하며 ‘의대 로드’도 다변화했다. 헝가리∙체코 등 동유럽권 의대가 각광받더니, 최근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캐리비안의 의대’도 등장했다. 의대 입학을 위해 쿠바 동남쪽에 위치한 영연방 국가 ‘그레나다’로 향하는 한국 학생도 수십 명이라고 한다. 카리브해의 그레나다는 누군가에겐 의대가 아니었다면 잘 들어보지 못했을, 인구 10만명의 작은 섬나라다.

의사보다 과학자가 조명받고, 서울대 공대가 의대만큼의 인기를 누렸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지방대 의대까지 한 바퀴 돌고 난 뒤에야 서울대 공대가 학생을 받는다”는 말이 굳어진 지 오래다. 중학교 1등 학생도 과학 영재고 대신 일반고를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추천서 배제 등 의대 진학 페널티가 있는 영재고보단, 일반고에서 착실히 내신을 관리하는 것이 의대 입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국내 봉직의(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임금노동자 소득의 4.6배를, 개원의는 7.1배를 번다. OECD 평균은 각각 2.7배와 4.6배다. 다른 전문직과 일부 대기업도 ‘평범한’ 직장인과의 차이를 벌리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소득 격차는 2021년 기준 2.1배에 달한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선 의대 입학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수능을 치거나, ‘문과생의 의대’로 여겨지는 로스쿨을 준비하는 3040 직장인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좋은 직업과 그렇지 못한 직업으로 노동시장이 양극화될수록 학생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학과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로스쿨∙회계사 등 각종 전문직 자격시험 응시자 수가 해마다 최대치를 경신하는 이유다. 지금의 의대 광풍은 저출생 대책처럼 여러 정부 부처가 함께 들여다봐야 할 사회 문제다. 카리브해까지 찾아가는 이들에게 쯧쯧 혀를 차기는 쉽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이 없다면 의대 광풍은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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