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31] 러셀과 아인슈타인의 공동선언문
조폭과 ‘일진’만 뭉쳐 다니는 것은 아니다. 지성인들도 몰려다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고등과학원은 천재들이 몰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20세기 초에는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괴델, 오펜하이머 등 전공 분야를 딱히 가르기 힘든, 전설적인 천재들이 고등과학원에 뭉쳐 있었다.
과학계의 대표적인 ‘일진’은 솔베이 회의다. 그 회의는 물리와 화학을 연구하는 학술회의인데, 1911년 첫 회의가 열린 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중에서 1927년 10월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회의는 과학사의 전설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막스 플랑크, 마리 퀴리 등이 모여 막 뚜껑이 열린 원자의 세계에 대해 뜨겁게 토론했다. 양자역학의 출발점이 된 그 ‘일진’ 모임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소신을 지킨다면, 철학자들은 연구실 밖에서 소신을 실천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평생 시민운동에 매달렸다.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89세 노인이 ‘사회 평화를 깨뜨린’ 혐의로 구금된 것은 아이러니다.
러셀의 시위는 1954년 남태평양 비키니 군도에서 실시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 때문이다. 미·소 냉전이 심각하게 전개되던 때인데, 그쯤 되자 행동파 러셀은 물론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아인슈타인도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핵무기 제조 중단과 핵의 평화적 사용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1955년 7월 9일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선언문에 서명한 11명의 ‘일진’ 중에서 9명은 이미 노벨상 수상자였고, 1명은 나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 석학들의 경고가 1963년 핵실험금지조약과 1968년 핵확산방지조약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폭이 뭉치면 범죄를 일으키고, 지성인이 뭉치면 역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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