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2] ‘더러운 평화’와 ‘이기는 전쟁’
“전우의 편지는 끼엔의 가슴을 덥혀주었다.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다. 전쟁을 겪을수록 파멸의 힘보다 더욱 강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전쟁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해도,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점점 믿게 되었다. 모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추악한 것도 남아 있었고, 아름다운 것도 남아 있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본래의 자기 자신만은 바뀌지 않았다.”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중에서
지난 정부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가 더 가치 있다’고 했다. 현재 야당도 ‘비싼 평화,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한다.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미사일 발사, 북방한계선 침범, 서해 공무원 피살 등 북한의 끝없는 도발에도 전 정권은 비굴한 평화를 위해 노력했고, 야당은 자유를 찾아온 청년들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 사지로 돌려보내면서까지 잔인한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뜻일까.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수 없다’는 말은 베트남의 소설가 바오 닌이 2012년에 우리나라의 어느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작가의 참전 경험을 녹여낸 소설 ‘전쟁의 슬픔’은 미군과 한국군을 괴뢰군이라 부르며 맞서 싸운 북베트남군의 시선으로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한다.
‘우파 기회주의자, 사상이 의심스러운 불만분자라는 비판을 받고 숙청된’ 아버지와 사회주의 사회를 답답해하는 연인을 이해할 수 없던 주인공 끼엔은 자원 입대한다. 그러나 이념과 승패를 떠나 전쟁이 남긴 건 죽음과 파괴, 상처와 고통뿐이었다. 베트남 공산당은 ‘조국 통일, 민족 해방 전쟁’을 영광스럽게 미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이 소설을 판매 금지했다.
북한은 무력을 사용하지 말자던 군사 합의를 깨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주적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고 편들고 감싸기 바쁘다. 부국강병을 위한 의지와 노력도 전쟁하자는 거냐며 비난한다. 그들은 왜 북한을 향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더러운 평화가 승전보다 나으니 당장 무릎 꿇고 항복하라’며 호통치고 설득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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