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다리’, 인도와 스리랑카를 이었지만 전쟁도 불렀다
홀로세(충적세)는 약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뜻한다. 홀로세는 빙하가 물러나면서 시작된 신생대 제4기의 두 번째 시기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다. 현재의 심각한 기후변화 등을 근거로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현재는 홀로세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해협의 탄생은 홀로세의 특징적 사건 중의 하나였다. 한반도 남해안과 제주도도 육지로 붙어있다가 간빙기에 분리되었다. 스리랑카도 본디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 인도반도의 다른 이름으로 대륙에 버금간다는 뜻)에 붙어있었는데, 간빙기가 시작되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섬이 됐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해협이 탄생한 것이다.
인도아대륙과 스리랑카 사이는 일명 팔크(Palk) 해협이라 불리는데 워낙 수심이 낮아서 해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낮은 곳은 수심이 1미터에 불과하여 선박 통행이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도 해협 명칭보다는 인도와 스리랑카를 잇는 ‘아담의 다리’ 혹은 ‘라마의 다리’로 불렸다. 해협을 신화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항공사진을 보면, 인도 남동쪽 라메스와람섬과 스리랑카 북서의 만나르섬 사이에 길게 다리 같은 것이 물에 잠겨있음이 확인된다. 이미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후르다드베가 ‘바다의 다리’를 언급했으며, 11세기 초반에 ‘아담의 다리’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스리랑카에 있는 ‘아담의 봉우리(Adam’s Peak)’라는 산을 아담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으로 믿고 있다. 아담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스리랑카 북쪽에서 다리를 통해 인도로 건너갔다고 해 ‘아담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다를 건너온 무슬림 상인들이 해협 인근에 정착하면서 이러한 로컬 신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살던 페르시아만에서 가져온 신화가 변형되어 해협에 정착한 셈이다. 구약성서에는 아담이 쫓겨난 에덴 동산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근에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와는 다른 신화인 것이다.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인 ‘라마야나’에서 스리랑카에 가기 위해 라마가 이용한 데서 ‘라마의 다리’가 기원했다. 인도 남쪽 타밀나두의 힌두교 세력이 바다를 건너 스리랑카로 확산되던 상황을 반영한다. 인도 타밀 세력은 끊임없이 힌두를 전파시키려고 했다. 불교국가 스리랑카에 잔존하는 북부의 힌두 사원은 이렇듯 본토와 섬 사이의 길항관계를 반영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스리랑카 북동부에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해 무장 반군 단체 ‘타밀일람 해방호랑이’가 스리랑카 정부와 내전을 벌인 것은 이렇듯 해협을 건너온 대륙 세력과 섬 세력의 갈등을 상징한다.
아담의 다리가 되었건 라마의 다리가 되었건 인도아대륙과 섬의 소통과 교류 역사를 반영하는 말들이다. 해협 탄생의 온갖 신화적 기제는 실체적 근거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고지리학에 따르면 기원전 7000년, 즉 1만여 년 전에 인도아대륙과 분리되어 폭 48킬로미터에 불과한 해협이 탄생했다. 대륙에서 섬으로의 분리는 스리랑카의 자연뿐 아니라 역사 문화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을 당시 최초의 호모사피엔스와 코뿔소, 하마, 사자, 호랑이 등이 스리랑카로 왔다가 섬이 되면서 고립됐다. 오늘날 스리랑카에서 이들 동물은 볼 수 없으나 화석은 남아 있다. 머나먼 후대에 스리랑카 불법(佛法)의 수호신으로 사자가 등장하고, 사자국이라고 불린 것은 과거에 섬에서 사자가 살던 전통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섬으로 분리됐어도 인도아대륙과 스리랑카 사이의 해협은 가까워 선사시대부터 뗏목과 선박을 이용해 많은 이가 건너 다녔다. 인구 증가와 조선술 발달, 탐험과 무역에 대한 욕구 증가로 이동이 더욱 빈번해졌다. 그러나 수심이 낮아 해협으로 선박이 통과하기 어려웠고, 국제 상인들은 스리랑카를 빙 돌아서 항해했다. 해협의 자잘한 섬에는 외국 상인 정착촌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원나라 시대의 지리 책 ‘도이지략’에는 ‘무리 지어서 회인(아랍인)이 섞여 산다’고 했다. 인도의 혹독한 카스트제도에서 신분이 낮은 바닷가 여성들이 아랍인과 결혼하여 혼혈인과 혼혈 마을이 탄생했다. 해협은 변방이었으며, 신분상으로도 변방에 위치한 낮은 카스트 여성들이 이국 남성과 결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아랍어와 타밀어가 섞인 독특한 방언 아르위가 탄생한 것이다.
인도 남부 해협에 있는 팔라야카얄 같은 항구는 13세기 무슬림의 무역 거점으로 부상했으며, 페르시아에서 수입된 말이 인도 남부의 왕국으로 들어갔다. 마르코 폴로는 카일이라는 도시를 방문하여 ‘바다로 열린 항구’라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한편으로 동쪽에서는 중국 상인이 당도하고 있었다. 명대의 청자와 청화자기 파편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은 아랍인보다 후대에 당도한 것으로 확인된다. 중국인은 무슬림처럼 집단 거주지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르코 폴로 같은 당대의 여행가들이 이 해협에 들렀을 뿐 아니라 기록을 남긴 것은 그만큼 국제적 중간 거점이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인도 남부 해협에 있는 페리야파티남에는 무슬림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인도 남부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던 페르시아 해상무역상의 후손이다. 그 덕분에 이곳에서는 쉽게 인도화한 페르시아 말을 들을 수 있다. 아담의 다리 근해에서는 진주가 많이 나온다. 아랍이나 페르시아, 중국 상인에게 진주는 수익이 남는 무역품이었다. 해협에서 상인들은 원주민을 고용하여 진주를 채취했다.
사실 이 해협은 아랍인과 중국인이 당도하기 훨씬 이전에 인도와 로마의 교역장이었다. 많은 구슬 목걸이와 보석류, 타일과 벽돌 등이 발견된다. 인도-로마의 교역장 알라간쿨람에서는 로마 동전이 발굴되었으며, 로마 황제의 두상, 지구본을 든 승리의 여신상도 발굴되었다.
인도아대륙과 스리랑카 사이에는 지금도 묘한 군사적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힌두교와 불교라는 종교적 긴장감도 흐르고 있다. 이처럼 해협은 늘 소통이자 갈등의 현장이다. 해협은 현생 인간이 살아가는 홀로세가 만들어낸 지질적 대사건이자, 인간 역사의 서사가 잠복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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