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에 금메달 노리는 ‘하키계 박지성’
2003년 당시 19세였던 남자 하키 대표팀의 수비수 장종현(39). 그는 막연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지냈다. 모든 능력이 준수한 수비수였지만, 반대로 특출난 점이 없었던 탓에 오래 뛸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선발로 나서기는 했으나 골은 언감생심이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에게 별안간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페널티 코너’ 담당 슈터. 페널티 코너는 축구의 코너킥과 비슷하게 골대와 9m 떨어진 골라인에서 시작하는 세트 플레이다. 2005년 지휘봉을 잡은 조성준 전 남자 하키 대표팀 감독은 장종현에게 힘이 세다는 이유로 페널티 코너 패스를 받아 바로 슛을 날리는 선수로 임명했다. 고난도 슛 기술이 필요한 덕분에 수비수가 전담 슈터로 나서는 팀은 드물다.
얼떨결에 임무를 받은 장종현은 반항심이 끓어 올랐다. 그는 “(코치들이) 동영상 몇 개를 보여주시더니, 앞으로 내가 담당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전부 독학으로 연구해야 했다. ‘이게 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고 했다. 처음엔 골대 근처에도 공이 가지 않았다. 한심한 슛들이 반복되자 오기가 생겼고, 공식 훈련이 끝난 오후에 400골씩 연습했다. “손에 물집이 잡혀도 계속했어요. 골반을 어떻게 틀어야 하는지, 팔꿈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고 치고 하기를 반복했죠.”
장종현은 피나는 노력 끝에 1년 만에 기술을 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지옥 훈련을 거친 덕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갈고 닦았던 첫 무기를 선보였다. 상대 팀은 장종현의 슛 실력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탓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대회 15골을 몰아 넣는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선보이면서 득점왕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처음엔 별 기대를 못 받았었죠. 그런데 토너먼트 때는 선배들이 ‘너가 골 못 넣으면 우리는 진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여기서 한몫하고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죠.”
미래를 불안해하던 소년 장종현은 3년 만에 ‘골 넣는 수비수’로 세계 하키계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덕분에 하키 강국인 독일, 네덜란드 프로 리그에서도 선수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국제 대회에서 차지한 득점왕 횟수만 해도 8회에 달한다. 총 314경기 139골. 외신들은 장종현에게 ‘페널티 코너 전문가(expert)’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키계 관계자는 “하키에서 장종현은 축구의 박지성 선수 정도 위상은 된다”고 했다. “만약 그때 감독님이 페널티 코너 슈터를 시켰을 때 ‘못 합니다’라고 했으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상상했는데 아찔하네요.”
선수 생활 막바지에 다다른 장종현에게는 마지막 바람이 있다. 또 하나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한국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강한 전력을 과시했지만, 2010년 광저우 때는 4위, 2014년 인천 동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5위에 그쳤다.
“2006년 도하 때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어서 큰 부담이 없었어요. 선배 역할을 하다 보니 우승까지 후배들을 이끄는 건 정말 어려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배들이 그랬듯 저도 후배들에게 우승의 기쁨을 맛보여 주고 싶습니다.” 부주장 장종현은 주장 이남용(40)에 이어 둘째로 나이가 많다.
장종현이 이끄는 남자 하키 대표팀은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가는 것이니, 국민에게 실망을 드리면 안 된다고 늘 저희끼리 이야기해요.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느낌은 말로 표현을 하기가 어려워요. 이걸 느끼려고 하키를 했나 싶을 정도니까요. 반드시 좋은 성적 내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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