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의 헌정 앨범… 재즈 외길 60년 헛되지 않았다
“두비두비 두바~. 루이 암스트롱이 트럼펫 불다 실수를 해서 대신 즉석으로 흥얼거린 게 스캣(Scat·재즈의 즉흥 창법)의 시작이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고, 자유로운게 재즈의 매력입니다.”
가수 김준(83·본명 김산현)이 농후한 목소리로 스캣을 읊조리자 금세 귀가 쫑긋해졌다. 요즘 젊은 세대가 미국 여성 재즈 보컬 엘라 피츠제럴드의 스캣 영상에 열광한다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들려준 리듬이었다. 엘라는 영상에서 “재즈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훌륭한 스캣으로 답한다. 김준도 그 질문의 모범 답안지 같은 길을 걸어왔다. 1962년 국내 4중창 그룹 ‘쟈니 브라더스’로 데뷔, 1970년 솔로 전향한 후엔 60년 음악 활동을 재즈에 헌사해왔다.
지난달 김준은 특별한 헌정 음반을 품에 안았다. 재즈 디바 웅산, 가수 김장훈, 유사랑, 이주미, 마리아킴 등 후배 5명이 각자의 색으로 김준의 자작곡 8곡을 나눠 부른 헌정 음반 ‘왓 어 원더풀 월드’를 낸 것. 사후가 아닌 활동 중인 뮤지션의 헌정 음반이 나오는 건 드문 일이다. 최근 서울 구기동 ‘김준 클럽’에서 만난 김준은 “얼마 전 다리 골절상으로 입원을 해 병원에서 헌정 음반 실물을 전해 받았다. 아무리 후배여도 가수들은 사실상 다 경쟁 관계인데, 이런 게 쉽지 않다는 생각에 더 뜻깊었다”고 했다.
이번 헌정 음반 이름이자 김준이 직접 부른 유일한 수록곡인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는 그의 노래 인생의 기원과도 맞닿아 있다. 평북 신의주 만석꾼 집안이었던 그의 가족은 1946년 월남했다. 곧 6·25 전쟁이 터졌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산 영도다리 밑에 거적을 깔고 자고, 주식은 고구마, 그것도 없으면 이삭을 주워먹는 처참한 피란 생활”이 시작됐다.
남북으로 밀고 당기는 전선에 휘말린 그의 가족은 강원 영월, 부산, 목포를 거쳐 결국 제주도 모슬포 지역까지 떠밀려 갔다. 이곳에서 김준은 생계를 위해 중학생 때부터 제주도의 미8군 통신부대 하우스보이로 취직하면서 재즈를 처음 접했다. 부대 내 교회 흑인 목사 채플리 게일과 집무실에서 루이 암스트롱, 엘비스 프레슬리, 머핼리아 잭슨 음악을 배경 삼아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눈 게 시작이었다. “그땐 영어를 못해서 ‘왓 어 원더풀 월드’를 듣고도 가사나 제목을 전혀 몰랐죠. 그저 탁성으로 부르는데도 감미롭고, 트럼펫도 직접 부네. 이야 이런게 다 있나. 그렇게 재즈에 심취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그를 처음 전업 가수의 길로 이끈 건 1961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주도했던 국내 최초 프로 합창단 ‘예그린’ 입단이었다. 김준은 특히 “예그린에서 군복 차림 김종필 단장을 본 첫인상이 참 멋있었다”고 했다. “군인 출신이 음악단을 창설? 신기했죠. 구음으로만 전해오던 우리 국악 소리를 합창곡으로 많이 만들었고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김준을 비롯한 예그린 막내 출신들이 곧 쟈니 브라더스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1964년 신영균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곡으로 쓰인 ‘빨간 마후라’는 특히 이들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고, 우리 공군의 주제가로도 쓰였다. 하지만 “음악적 매너리즘과 4인이 수입을 분배하다 보니 미래가 보이질 않았다”는 이유로 그룹이 해체되면서 김준은 ‘재즈 외길 인생’을 걷게 됐다.
이후 김준은 보컬 외에 인어공주 한국어 버전(1989)의 ‘세바스찬’ 등 만화 성우로도 눈도장을 찍었고, 작곡 활동을 펼치며 자작곡만 1000여 곡을 발표했다. 1982년 ‘사랑하니까’ 등 김준이 쓴 12곡으로만 꽉 채운 패티 김의 정규 음반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꼽힌다. 김준은 당시 “패티 김 여사가 서울에 연 ‘맘마미아’란 레스토랑에 가수로 서달란 부탁을 받고 갔다가 곡 의뢰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패티 김씨는 최고의 가수였고,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공연해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죠. 저에게 “미스터 김, 나 이제 여기 한국에 머물고 싶다”더군요. 그걸 듣고 쓴 게 ‘나 이제 여기에’. 또 패티 김씨가 당시 연애 중이었던 미스터 게디니, 현 남편분을 참 좋아한다더군요. 그걸 듣고 쓴 게 ‘당신이면 좋아요’. 그렇게 드렸더니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어요.”
김준은 남성 재즈 보컬이 희귀한 국내에서 가장 먼저 재즈를 주종목으로 택한 뮤지션으로 자주 꼽힌다. 하지만 “그런 칭찬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도 ‘재즈 좋아해요’라곤 하면서 안 하더군요. 돈 안 되고 어려운 장르란 인식 때문에…. 사실 미국에선 레스토랑에서 출발한 친숙한 음악인데요.” 60년간 직접 몸으로 겪어온 재즈는 “한 사람의 성품과 철학이 자연스레 담기는 음악”이라 했다. “어떻게 하면 재즈를 잘 알 수 있냐는 질문을 수십년째 들어요. 제 답은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 그럼 분명 친숙해지고, 그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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