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알 수 없는 세상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2023. 7.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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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학생 때, 적조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했다. 진동만 바다 한가운데 억대 가격의 측정기구를 담가두고 매주 가서 채수도 하고 저장된 그간의 관측자료를 담아와서 실험실에서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고된 일정이었지만 연구원들이 서로 힘을 모아 공동의 연구를 해 낼 때의 지적 희열은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찮은 일이 다른 누구에게는 삶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적조란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번식해 바닷물 색깔까지 붉어 보이는 현상이다. 플랑크톤은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너무 많아도 문제를 일으킨다. 플랑크톤이 지나치게 번식하면 물고기의 끈적한 아가미에 잔뜩 들러붙어 수중 호흡을 방해한다. 특정 플랑크톤의 대사산물은 독성을 띠고, 또 엄청나게 번식한 플랑크톤이 일시에 죽어 썩으면서 독성물질을 내뿜는다. 그리고 물속 용존산소를 고갈시켜 주변 수중 생태계를 망가뜨린다.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만드는 이유다.

적조 발생에 관여하는 요인은 어림잡아 수십 가지다. 그 가운데 주된 원인 몇 가지를 찾아내어 상관관계를 파악하려는 연구였다. 발생 원인 인자를 찾아내면 적조 예방, 예측이 가능해진다. 알려진 주원인은 수온을 비롯해 질소나 인 따위의 영양염류 농도, 일조량 등이었다. 과연 이 인자들의 증가가 적조 대발생과 얼마만큼의 상관성을 보이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측정하고 분석해서 얻은 엄청난 자료를 정리했더니 주요 원인 서너 가지로 엮는 일이 의외로 곤란했다. 줄곧 논문 제출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꿰맞추어 봐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였다. 자료의 값들이 분산되어 뚜렷한 상관성을 내세울 형편이 못 되었다. 하는 수 없어 별나게 어긋나는 관측값 몇 개를 제외하고 계산했더니 어느 정도 인정할만한 상관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실 측정을 하다 보면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 자료가 과연 측정오류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튀는 자료 몇 개를 덜어낸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일종의 데이터 조작 아닌가. 오류 제거와 내 의도대로 결과치를 맞추는 것의 경계는 모호하다. 갈등이 끓는다.

난관에 봉착해 고민에 숙고를 거듭하다 얻은 깨달음은 결코 자연을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숱한 요인들이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우리가 미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이 이루어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내면의 어마어마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 최첨단 과학 사회를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훨씬 더 많다. 자연에 간섭할 때 겸손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구절벽이니 지방소멸 시대니 호들갑 일색이다. 대책기금을 마련해야 하고 인프라를 확충하며 메가시티를 구성해야 한다는 둥 잡다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도도한 흐름을 허접한 몇몇 방안으로는 절대 되돌리지 못한다. 그간 이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이삐대고 있었다. 생태적인 삶을, 또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당연히 인구가 훨씬 더 줄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경제에만 눈이 돌아가 모든 것을 돈에 귀착시킨다면 지구온난화니 환경재앙이니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초저출산 국가다. 왜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가? 영악스레 계산에 밝고 이문만 쫓을 뿐 국가 백년대계는 안중에 없어서 그런가? 아니다. 이건 알지 못하는 거대한 생태적 흐름이다.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간다는, 지구의 신 가이아의 의도라고까지 일컫는 그윽한 흐름 말이다.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 모여 마치 큰 물처럼 도도한 흐름을 이뤄 흘러갈 때는 그 무엇도 거역하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다. 여태 내놓은 대책과 또 앞으로 짜낼 정책들은 하나같이 실패할 거라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이냐 묻겠지만, 오히려 이 흐름을 인정하고 순응하여 그 이후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섭리를 모르면 내내 똥 볼만 차다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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