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투리’도 존중하라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20년이 지나도록 유명한 어느 영화의 대사다. 배우의 입으로 발화되었을 때는 명장면이 되었지만, 만약 같은 대사가 소설에 등장한다면 어떨까? 당장 어떻게 쓰는 게 ‘올바른지’ 문제가 된다. ‘무따’ ‘뭇다’ ‘묵었다’ ‘무그따’…. 이 가운데 무엇을 택해야 할까. 적당히 아무거나 쓰면 어떤가 싶겠지만, 책으로 출판되기 위해서는 맞춤법 규정 등 지켜야 할 게 많다. 통일성을 위해서도 표기 원칙이 필요하므로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국립국어원에 문의하면 ‘방언에 관해서는 단정적으로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거기에 더해 ‘표준어 규정’에 맞출 것을 권장한다. 그렇다면 위의 대사의 가장 올바른 표기는 “그만해, 많이 먹었잖아”가 된다. 뜻이야 잘 통하겠지만 원래 느낌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의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총독부는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했다. 분단과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며 표준어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었고, 특히 1970년대 이후 강도 높은 표준어 교육이 실시되며 방송·출판 등 미디어의 영역에서 ‘사투리’는 고쳐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방언은 이렇다 할 표기 원칙조차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표준어가 유리하고, 이것이 근대의 정신에 부합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지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입말을 ‘바르게’ 적기가 불가능한 상황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러한 이유가 ‘방언은 교양이 없다’는 아리송한 낙인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 쓰는 사람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말까지 없어져 버린 몇몇 방언을 떠올려보면 말을 문자로 남겨두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를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어라면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발음까지 모두 귀에 익히려 노력하는 세상이다. 우리말에 있는 다양성도 그만큼 존중해준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무따’와 ‘뭇다’ 사이를 한없이 오가며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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