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자본주의의 운명

기자 2023. 7.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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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의 충돌 분위기가 좀 잦아들었다. 지난 3월 말 유럽연합(EU)은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언급했다.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고 과도한 의존을 줄인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초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에 동조했다. 이후 토니 블링컨, 재닛 옐런 장관이 중국을 찾았다. 옐런 재무장관은 “디커플링을 추진하지 않는다. 이는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양국 모두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신냉전’ 분위기로 경제 불안을 심화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른 한편 미·중 대충돌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미국과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함께 묶여 있는 현실이 ‘신냉전’으로의 질주를 제약하기도 한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최근 유재건 교수는 전환적 시대상황을 독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개념을 다시 논의한 바 있다(‘창작과비평’ 200호).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개념, 탄생, 종말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체제론자들 사이에는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이 있다. 이로부터 미루어 생각하면, 미·중 갈등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체제론자들은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일국 단위에서 형성되는 임노동체제로 본다. 순수한 좌파·우파는 모두 중국의 임노동체제가 미국·일본·한국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체제가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라고 보면, 미·중 갈등은 이념·가치의 충돌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가치를 기준으로 진영을 갈라야 한다는 것은, 이념적 좌파와 이념적 우파가 공유하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월러스틴은 시장과 임노동은 자본주의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시장은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도록 존속할 것이라고 본다. 그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독점적이고 반시장적인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20세기 말~21세기 초의 글로벌화와 기술진보 흐름을 보면 100년 이상의 시간을 더 관찰할 수 있었던 월러스틴이 자본주의의 양상을 더 현실에 가깝게 파악한 것 같다. 그는 자본축적이 세계적 차원의 복합적 사회관계를 매개로 이루어지며, 세계경제 안에 여러 개의 정치체제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세계체제론에서 보면, 세계시장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체제가 매개되어 있다. 세계의 금융 중심 미국은 세계의 공장 중국과 세계체제 속의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분리·자립을 의도하거나 시도할 수는 있다. 샴쌍둥이를 분리하려면, 몸을 반으로 잘라내고 봉합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분리 수술은 어린 나이, 결합 부위가 좁은 경우에는 성공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결합 부위가 넓은 경우에는 수술로 인한 출혈의 위험이 너무 크다고 한다.

경제인·현실주의자·자유주의자들에게 ‘디커플링’은 황당한 개념이다. 21세기의 세계체제는 해밀턴이나 리스트가 보호주의를 주창하던 18~19세기와는 복잡성의 차원이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전면 충돌은 국가와 국가의 충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서방 진영과 구소련 진영이 경제적으로 확연한 디커플링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진전된 글로벌화와 기술진보는 디커플링의 비용을 극도로 높여 놓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의 개념이 바뀌었다. 미국과 중국(또는 러시아)이 핵전쟁을 벌이면 지구는 멸망한다. 글로벌화와 기술진보 역시 세계를 바꾸었다. 한정된 영역을 넘어선 대규모 디커플링은 미국과 중국을 모두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경쟁이든 협력이든 미·중관계가 질서를 잡지 못하고 충돌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불바다에 빠지고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낙관했다. 현실은 마르크스의 낙관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월러스틴은 마르크스가 논의했던 이행의 실패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 역시 현재의 자본주의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이후 어떤 세상이 올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세계체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떤 길을 갈까? 1970년대 이후는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는 시간이었다. 중국이 세계체제 안에서 의외의 급성장을 지속하자, 2010년대 들어서는 미·중 양쪽에서 국가 간 경쟁 관점이 떠올랐다. 그런데 충돌이 선을 넘고 질서가 무너지면 세계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제국의 경험과 꿈을 지닌 그들이 일국적 이념의 몽상을 따라 멸망의 길로 갈 것인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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