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장모님의 시집을 엮으며
“잘못도 없고 잘함도 없는지라 술과 음식 마련할 생각뿐이니 부모 걱정 끼칠 일 없겠네.” 아들은 귀하게, 딸은 천하게 길러야 한다는 관념을 문자 그대로 표방한 시인 ‘사간(斯干)’의 일부다. 공자의 명성으로 경전의 반열에 오른 <시경>에 실려 전한다. 여자는 잘못된 일은 물론 잘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이 가혹한 요구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할 여자가 두각을 드러내면 불길하다고 여기는 오랜 전통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이대우가 어릴 때 시골 훈장에게 <시경>을 배우다가 의문을 품은 것도 이 대목이었다. 무엇이든 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인데 이 한마디 말로 모든 여자를 어리석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어릴 적 품은 의문은 결혼해서 장모를 만나면서 더 커졌다. 장모 홍원주의 친정은 특이했다. 좌의정 홍석주와 문장가 홍길주가 오빠였고, 남동생 홍현주는 부마인 권세가였는데, 어머니 서영수합은 아버지와 시를 주고받으며 즐겼다. 서권기 넘치는 집안에서 그녀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시를 짓곤 했다.
이대우 역시 장모의 학식이 대단하다는 명성을 들었지만, 장모는 여자로서의 일만 묵묵히 할 뿐 책과 시에 관한 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시집온 뒤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철저히 감추고 산 것이다. 장모가 돌아가신 뒤에야 이대우는 장모가 지은 시 수백 편을 볼 수 있었다. 정작 <시경>에는 여자가 지은 시가 많은데 여자가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장모의 시를 사라지게 둘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그는 시집 편찬을 추진했다. 그리고 부인네가 시를 지어 무엇하냐는 말은 시골 훈장의 좁아터진 식견에 불과하다는 일갈로 시집 서문을 마무리했다.
이대우의 의문은 오늘의 관점으로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당시로서는 통념과 금기를 깨는 일이었다. 노골적인 성차별은 줄어들었지만, 잘하는 일 말고 주어진 일이나 하라는 말을 당연한 듯 들어야 하는 이들은 다른 모양으로 오늘도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시대 풍조에 따라 획일적으로 강요되는 욕망에 휩쓸려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할 기회조차 빼앗기는 일이다. 통념과 상식의 언저리를 유동하며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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