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여름은 새가 길을 잃는 계절
제주 서귀포시 하례동의 한 허름한 돌담 밑에서 낯선 새 한 마리가 외롭게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지난 2006년 7월10일이었다. 당시 한반도 남녘으로는 태풍 ‘에위니아’가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아이라인이 요염했다. 흰 눈썹도 예사롭지 않았다. 국내에선 딱 두 차례밖에 관찰되지 않은 에위니아제비갈매기의 첫인상이었다. 주로 해안 절벽이나 조수 웅덩이 등지에 둥지를 틀고 서식한다.
이후 제주도 남쪽 해안에서 또다시 발견됐다. 2014년 7월19일이었다. 당시에도 태풍급 강풍이 들이닥쳤다. 녀석의 이름 앞에 태풍의 명칭인 ‘에위니아’가 붙여진 연유였다. 에위니아는 미크로네시아 언어로 전설 속 폭풍의 신을 뜻한다.
한국야생조류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길을 잃고 한국을 찾은 새는 에위니아제비갈매기 외에도 흰제비갈매기와 큰군함조 등이 있다. 흰제비갈매기는 2014년 8월4일 태풍 ‘나크리’가 한반도를 통과한 뒤 충북 영동에서 탈진한 상태로 발견됐다. 새하얀 몸과 파란색 부리 기부가 특징이고 둥지를 만들지 않고 적당히 오목한 곳에 알을 낳는다. 큰군함조는 2004년 8월19일 태풍 ‘메기’의 영향으로 길을 잃고 제주 외도동까지 날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2007년 8월22일 가파도, 2012년 8월30일 제주도 등지에서 추가로 관찰됐다.
여름은 겨울만큼 혹독한 계절이다. 따갑게 쏟아지는 햇볕이 그렇고, 불쑥 들이닥치는 폭우도 그렇다. 새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이맘때 찾아오는 태풍은 그래서 새들에게는 저승사자다. 가던 길까지 멈추게 하고 길까지 잃게 만들어서다.
태풍 탓에 희귀 조류는 길을 잃고 한반도에 잠시 머무른다. 그런데, 이처럼 국내에선 태풍이 닥치지 않고선 좀처럼 이방에서 날아온 새들을 만날 수 없다. 그게 동북아에 위치한 한반도의 숙명이다. 자연재해가 주는 반전의 선물인가.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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