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 ‘극단적 선택’, 극단도 선택도 아니다
1803년 미국 의회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준주(準州)를 사들였다. 당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탐사할 책임자로 29세의 메리웨더 루이스(1774~1809) 대위를 임명했다. 타고난 총명함과 추진력을 갖춘 루이스 대위는 지리학, 자연사, 의학, 식물학, 천문학을 공부하여 미국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선주민 부족수, 그들의 언어, 전통, 기념물, 농업, 유행병, 법, 관습 등 각 지역의 토양과 지형, 식물과 동물, 광물과 화산 지형까지 성공리에 조사를 마쳤다. 적절한 조증(躁症), 성실성, 진취력, 판단력, 용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탐험 이후 주지사까지 지낸 그는 사망 전까지 2~3년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늘 술에 취해 있었으며 아무 데나 돈을 쓰고 넋이 나간 듯 실수와 무례를 반복했다. 무엇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책임감 그 자체’였던 루이스는 가장 중요한 업무인 탐험 보고서를 쓰지 않았다. 대통령으로부터 계속 재촉받았다. 그는 35세에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미스터리와 연구를 낳았지만, 학계는 평범한 우울증 환자였다고 결론내렸다. 200년 전, 다방면에 박식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미 알고 있었다. 루이스는 원래 우울증 환자였고, 탐험이라는 대역사(大役事)를 위해 에너지를 총동원하다 보니 우울증세가 ‘보류되었다’고 분석했다. 우울증은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소인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되는 우울증’이 아니라 여타 질병과 같다는 점이다. 루이스 집안은 친가가 그랬고, 아버지가 우울증 환자였다(<자살의 이해>, 274~294쪽). 우울증 증상 중 하나는 타인으로부터 요구와 독촉을 받았을 때 죽고 싶도록 괴롭거나, 그로 인한 사망이다.
누구나 능력과 무관하게 질병에 걸린다. 우울증도 그런 질병 중 하나일 뿐이다. 과학자 김우재에 의하면, 인류는 생물학 연구비의 30%를 암 치료에 사용한다. 우울증과 자살은 심각성에 비해 가장 연구되지 않은 분야일 것이다. 우리는 자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덕분에 자살은 낙인과 금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조차 속삭인다.
유능한 인물이 자살할 경우 “평생 나누어 쓸 에너지를 짧은 시간 다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티베트 의학에서는 소식(小食)을 장수의 기준으로 보는데, 이유는 일반 상식과 다르다. 총량, 즉 인간 한계의 법칙인데 인간에게는 평생 먹을 양이 정해서 있어서 나눠 먹으면 오래 산다는 논리다. 사람마다 기력과 먹을 양이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병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신은 몸의 일부다
스티브 잡스가 의지가 약해서 암에 걸렸는가. 헤밍웨이의 조울증과 자살은 예술가의 병인가. 우울증도 능력과 환경에 영향을 받거나/안 받거나, 그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다른 질병처럼 그만의 증상이 있고, 다른 질병처럼 같은 환자들 간의 차이도 크다.
19세기는 결핵, 20세기는 암, 21세기는 만성질환의 시대라고 한다. 진단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통증의 시대다. 예전에는 생활의 일부인 우울한 기분과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다른 현상이었다. 하지만 우울과 우울증의 경계가 급속히 흐려지고 있다. 우울은 분노의 성별화, 권력관계와 관련된 증상이었다. 남성(‘강자’)의 분노는 폭력으로, 여성(‘약자’)의 분노는 우울로 드러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전자를 타인에 대한 투사(投射), 후자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내사(內射)라고 한다. 한국의 한(恨)의 문화는 분노를 제대로 표출할 수 없는 여성적인 병, 약자의 문화다.
예전에는 자살도, 자살 시도에서도 성(性)의 차이가 컸다. 시도는 여성이 많지만, 실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남성이 많았다. 지금은 이 모든 이론이 무용하다. 우울한 남성도 많고 여성의 자살률도 대단히 높다. 연령과 성별, 계층의 구분 없이 주된 사회현상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반응도 조금은 발전했다. 예전에는 “생명 경시” 운운하며 비난이 거셌지만, 지금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수용하는 편인 듯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인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실감, 적응이 안 된다.
2021년 한 해 1만3352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은 20대보다 4배 이상 높다. 한국에서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른 모든 원인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이며, 40대와 50대에서는 사망 원인 2위이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1명이지만 한국은 24.1명으로 무려 13명이나 많다.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며, 2위와의 격차도 엄청나다. 이 모든 통계는 축소 보고된 것이다. 자살, 성폭력 등은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는 대표적 분야다. 외국인에게 유일하게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스위스에서도 한국인이 아시아 회원 중에서 1위다(인도나 중국의 인구를 생각해보라).
우리 사회에는 자살에 대한 보건 정책이 있는가. 자살에 대한 무지의 첫 단계는 인간의 질병을 신체(몸)와 정신(마음)으로 구별하는 이분법과 정신이 우월하다는 위계다. 그러니 정신이 문제가 있으면 시민권을 상실한다. 마음은 몸이 아닌가? 마음은 몸 밖에 있는가? 암환자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만 정신병자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우울증을 다른 질병과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당뇨는 약을 복용하지 말고 의지로 치료해야 한다”거나 “암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없다. “우울증에 빠졌다”를 암으로 바꿔 보면 얼마나 난센스인지 알 수 있다. 세상에 암에 ‘걸린’ 사람은 있어도, 암에 ‘빠진’ 사람은 없다.
극단적 선택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대표적인 표현은 “극단적 선택”이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다. 혈액암, 근육통성뇌척수염, 코로나, 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으로 사망한 이들에게 선택했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다른 죽음은 애도하면서 왜 자살만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는가. 선택은 고르는 것이다. 최소한 두 가지 이상 선택의 여지가 있고, 선택할 의지의 힘,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우울증은 이 의지가 오작동하거나 고장난 질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야 한다. 인간의 삶은 매 순간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중증 우울증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몸에서 의지가 빠져나간다. 중력이 몸을 잡지 않는다. 영혼(의지)이 몸에서 사라지면 현상은 죽음이다. 자살은 비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자살골” “자살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자살 충동(death drive)”도 잘못된 번역이다. 드라이브(drive)는 충동이 아니다.
선택이라는 말에 “극단적”이 붙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극단적인 환경은 아니다. ‘극단적 선택’은 건강한 사람만 가능한 일이다. 자기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다. 그러나 이 정도로 건강하고, 이 정도로 자원이 많은 이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사망 첫 번째 원인이 자살인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환자에 대한 낙인을 넘어 사회적 논의를 어렵게 한다. 지나친 음주, 음주 운전, 아동 학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방관 지지하는 이들의 행위이야말로 극단적 선택이 아닐까. 이 경우는 정말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아픈 사람의 질병사를 왜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가. 이 표현의 전제는 분명하다. 이 말의 배경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짜 극단’의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나 장애는 인식이 가능하다. 우울증은 의지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의지가 고장 나서 생긴 병이요, 자살은 질병사다. 근대 자본주의에서 의지는 중요한 개념이다. 의지는 생산력, 미래 지향, ‘정신 승리(자율성, auto/normy)’ 등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사람마다 약한 부위가 있듯, 의지 역시 차이가 있다. 또한 사람마다 집중하는 분야가 다른 것처럼 의지 실현의 영역도 다르다.
자살은 죽을 만큼 아프기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이다. 자살하는 이들은 미래가 불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이는 비합리적 신념이 아니라 질병의 증상이다. 이 때문에 자살은 극단적이지도 않고 선택은 더욱 아니다. 특히 중증 우울증 환자는 자살하지 않는다. 선택할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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