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로 건물 냉·난방… 비용·온실가스 모두 낮춘다

송은아 2023. 7. 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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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에너지 체질 바꾸기’ 속도
지하 평균 15도… 여름 시원·겨울 따뜻
한양대 기숙사 도입 年 1억 지출 절감
‘스페이스 살림’ 연간 29% 비용 아껴
땅 뚫어야 해 신축 외 설치 까다로워
설치 후 관리 쉽고 무한 재생 ‘장점’
市 “2030년 신재생에너지 5배 확대”

지난겨울 에너지 요금이 요동쳤지만 서울 동작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살림’은 근심이 덜했다. 냉난방을 모두 지열로 한 덕분이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기숙사인 제5학생생활관도 마찬가지다. 12층 건물을 데워야 했지만, 필요 에너지의 절반 가까이를 지열로 충당해 고유가의 충격을 다소 덜 수 있었다. 이 기숙사는 지열로 매년 ‘억대’의 에너지 비용을 아낀다.

서울은 전기를 쓰기만 하고 생산은 못 하는 ‘에너지 과소비 도시’로 보통 여겨진다. 그러나 위 두 건물처럼 서울에서도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건물이 늘고 있다. 그만큼 탄소 중립 도시를 실현하는 데도 한발 다가가고 있다. 지열 같은 재생에너지는 계속 써도 마르지 않는 데다 온실가스 배출도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최근 폭우·폭염이 반복돼 기후변화가 체감되는 가운데 서울시는 ‘에너지 체질’을 바꾸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까지 화석연료를 줄이고 지열·수열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2021년 4.2%에서 21%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한양대학교 제5학생생활관 지열에너지 설비
◆지열로 온실가스 배출량 줄여

지난달 찾은 한양대학교 제5학생생활관의 지하 1층 기계실에는 거대한 파이프 라인과 금속박스들이 도열해 있었다. 넓은 공간에 낮은 기계음만 웅웅 댔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도 발 아래에서는 지하의 차가운 물이 파이프를 타고 끊임없이 올라왔다. 21.2도의 온도로 기계실에 도착한 물은 히트펌프를 통해 열교환을 하고는 24.6도가 돼 땅으로 돌아갔다. 지하에서 올라온 물 덕분에 13.6도까지 내려간 지상의 물은 12층 건물 곳곳으로 뻗어나가 냉방에 쓰이게 된다. 2017년 완공된 제5학생생활관은 건물 바로 아래 48개의 구멍을 깔고 앉아 있다. 파이프가 들어간 이 구멍은 지하 약 250m까지 내려간다. 파이프를 통해 사계절 일정한 지하의 열에너지가 공급된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열에너지는 지하의 토양·암반·지하수가 가진 열에너지를 건물의 냉·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지하 온도는 평균 15도다. 여름에는 지하가 땅 위보다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지열의 장점은 설치 후 추가 비용이 적다는 점이다. 히트펌프를 돌리려면 전기가 필요하지만, 지열 자체에서는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동작구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살림 지열에너지 설비
한양대는 처음에 탄소 감축을 위해 제5학생생활관에 지열·태양광을 도입했다. 직접 써보니 결과가 만족스러워, 현재 짓는 제6·7학생생활관에는 지열 비율을 더 늘렸다. 제5생활관의 신재생에너지 도입 비율이 15.9%이나 제6·7생활관은 47.7%로 세 배나 증가했다.

제5생활관의 경우 건물 전체에 필요한 에너지 중 48%를 지열로 충당한다. 지열에너지 설비에 약 5억1200만원이 들어갔고, 지열을 써서 매년 1억800만원 정도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약 5년 만에 설비 투자 비용을 회수한 셈이다. 한양대는 6·7생활관의 경우 도시가스를 사용했을 때보다 에너지 비용이 3억4000만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991t 감축될 것으로 기대했다.

복합문화공간인 스페이스 살림은 지하 2층, 지상 7층 건물의 냉난방과 온수를 지열 하나로 해결한다. 전등을 켜고 공조시스템을 돌리는 등 일부에만 외부 전기를 쓴다. 2020년 12월 완공된 이 건물은 지하 200m까지 112개의 구멍을 뚫어 지열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열을 쓴 결과 도시가스로 돌리는 냉온수기보다 에너지 비용을 연간 29%가량 절감한 것으로 추정했다.

◆관리 쉬워… 설치 어려움은 걸림돌

지열의 또다른 장점은 도시 환경에 적합하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이 연면적 1000㎡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면 법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일정 비율 확보해야 한다.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법에서 정한 재생에너지 중 바이오·풍력·해양·폐기물은 도시에서는 활용이 힘들다. 태양광으로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어렵고, 물을 이용하는 수열은 지리적 제한이 있다. 수소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다만 지열은 설치가 까다롭다. 땅 밑을 뚫어야 하니 신축 건물이 아니면 도입이 어렵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걸림돌이다. 땅에 묻은 파이프에 구멍이 뚫릴 경우 땅속으로 물이 스며들며 지하수를 오염시킬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 지열 건물 속속 확대

재생에너지는 종류마다 장·단점이 다르기에 서울시는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고 있다. 지열에너지는 2012년 서울시청 신청사(용량 4154kW), 2020년 스페이스 살림(1365kW)과 동북권 세대융합형 복합시설(1247kW) 등 공공건물에 적용했다.

지난해 평창동 미술문화복합공간 등 5곳에도 지열에너지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기존보다 에너지 비용을 30%가량 줄였다. 올해는 로봇과학관 등 9곳, 2024년에는 서서울미술관 등 3곳에 지열에너지 적용이 예정돼 있다.

시는 친환경 에너지 보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에 제도 개선도 건의 중이다.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에너지 자립률을 계산할 때 에너지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태양광 등 특정 에너지원에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태양광은 발전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없고 공사가 쉽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받은 연면적 10만㎡ 이상 건물의 태양광 비중은 2019년 45%에서 올해 82%로 급격히 늘었다. 반면 지열은 2019년 44%에서 올해 7%로 줄었다. 히트펌프 가동 때 전기가 필요하고 초기 투자비가 크기 때문이다. 시는 “에너지 자립률을 산정할 때 신재생에너지원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는 제외하거나 보정계수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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