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한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아이와 부모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충분함에도 아이가 한글 공부를 싫어한다면 그 시간에 부모의 기분이나 상태가 예민하거나 날이 서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들은 놀이처럼 재미있게 가르친다고 하지만, 학습하면서 일어나는 중요한 인물과의 관계나 정서적인 상호작용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열심히 가르치다 보면 “똑바로 써야지”, “틀렸잖아”, “그게 아니잖아” 같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과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 아이가 느끼는 정서적인 불편함은 의외로 크다. 예민한 아이들은 한 번 혼났던 기억만으로도 그것이 각인되어 절대 안 하려고 들기도 한다.
또한 이 나이의 아이들은 소근육의 발달이 완전하지 않아 글씨를 삐뚤빼뚤 쓰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글씨를 삐뚤빼뚤 쓰면 “어머, 엄마가 지워줄게” 하면서 친절하게 다 지우는 사람이 있다. 아이가 열심히 쓴 것을 부모가 다 지워버리면 그 행동이 아무리 친절해도 아이는 굉장히 무력해진다. 자기가 열심히 한 것이 언제나 무의 상태가 되어 버리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경우 이리 와 앉으라고만 해도 싫어한다.
아이의 글씨가 엉망일 때는 공책 한 판에서 제일 잘 쓴 글자를 가리키며 “이 글자는 정말 똑바로 잘 썼네. 정말 잘 썼다”라고 칭찬해서 잘 쓴 글자와 그렇지 않은 글자를 아이 스스로 비교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정서상 부모와 자식 간의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에 지시와 명령적인 언어가 유독 많다. 공부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평상시의 언어도 지시나 비판이 많은데, 부모가 작정을 하고 아이를 비판하면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아이는 대부분 비난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뭔가를 가르칠 때는 특히 말투를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조언하면 어떤 부모들은 묻는다. “배움이라는 게 잘못된 것을 교정해 주는 것인데, 어떻게 비판자 입장에서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 물론 충고는 해야 한다. 하지만 좋은 말로 해야 한다. 우리는 존댓말을 쓰는 나라다. 존칭어가 있다는 것은, 존칭어를 쓰지 않으면 존경을 받거나 존중받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회적 정서가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의 정서는 내용보다는 말투, 목소리 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 단어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는다. 끝을 올리면서 “야!”라고 말하면 시작부터 기분이 상해버린다. 그 이후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한마디에서 이미 비난이나 지적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기준으로는 만 10세까지는 비판보다는 칭찬이 훨씬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는 초등기가 끝날 정도까지로 그 연령을 길게 잡아야 한다.
아이가 한글 공부를 싫어하지 않게 하려면 먼저 놀아 주고 조금만 시키는 것이 좋다. 놀아 주는 시간이 한 시간이면 한글 공부는 5분이나 10분만 한다. 아이가 싫어하지 않으면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도 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 하루 걸러 한 번 정도로 시간을 줄이도록 한다. 한글 쓰기는 만 6세부터 가르치고, 만 5세 때는 아이가 싫어하면 굳이 아이와 관계가 나빠지면서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다. 본격적인 한글 공부는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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