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내 삶의 길라잡이

2023. 7. 1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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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큰언니가 집을 찾아왔다.

그동안 언니는 간병과 간호를 거절당한 서운함에 내 전화도 받지 않았었다.

나는 그런 오해와 서운함을 풀어주기 위해 언니에게 문자로 내 진심을 전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 앞에 있는 언니는 꿈을 위해 전력질주하던 그런 힘찬 언니가 아니라 이제는 고요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노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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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큰언니가 집을 찾아왔다. 언니는 벨을 누르지 않고 전화로 현관문을 열어보라고 했다. 뭐지? 이 밤에. 시각은 밤 열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야참이나 야식 외에는 배달도 끊기는 시각이었다. 나는 야식을 주문한 일도 없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어보니 센서등마저 꺼진 어둠 속에서 언니는 짜잔, 마술처럼 서있었다. 너무 반가워 하마터면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 그동안 언니는 간병과 간호를 거절당한 서운함에 내 전화도 받지 않았었다. 평소에도 언니는 집안의 대소사에 맏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여전히 그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 편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언니는 유언을 남길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호되게 앓았고, 쇠약해진 상태에서 다시 코로나19에 버금가는 독감을 앓았었다. 그 영향으로 언니는 무척 약해져 있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런 언니에게 큰 수술을 앞둔 내 간호를 맡길 수 없었다. 너무 완강하게 언니의 호의를 거절하는 바람에 언니는 다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오해와 서운함을 풀어주기 위해 언니에게 문자로 내 진심을 전했었다. 그런 까닭에 언니의 깜짝쇼에 가까운 방문이 눈물이 날 만큼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수술 후의 내가 궁금해 더 이상 모르쇠로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환한 불빛 속에서 본 언니의 모습이 내가 염려했던 대로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단정한 결기로 강강해 보이던 언니였는데 안색도 좋지 않은 것이 어딘지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듯 보였다. 옛날의 언니는 참 빛났었다. 중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언니는 끊임없이 공부를 했고, 틈틈이 소설을 써서 지방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되기도 했다. 언니의 꿈은 대학교수와 소설가로 사는 것이었지만 그 꿈대로 살지는 못했다. 나는 언니가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며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언니를 따라 책을 읽고, 언니를 따라 공부를 하고, 언니를 따라 글을 끼적이며 언니가 걸어간 길을 따라 언니를 흉내 내며 걸었다. 이를테면 언니는 내 롤모델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 앞에 있는 언니는 꿈을 위해 전력질주하던 그런 힘찬 언니가 아니라 이제는 고요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노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과 대면하고 자신을 응시하는 그 고요한 시간들에서 언니는 또 다른 삶의 의미와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에게는 여전히 언니만의 빛이 있었다. 비록 이루지 못한 꿈이었지만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시간만으로도 언니의 삶은 아름다웠고, 빛났다. 그 빛은 언니가 보냈던 지난 시간들의 자취임을 안다. 우리가 보는 별빛이 그런 것처럼. 나는 오히려 지금의 언니가 더 좋다. 옛날에 언니를 따라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런 언니를 닮아가야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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