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가짜 과학’으로 국제기구 부정할 수 없다

2023. 7. 11. 23: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日 오염수 방류, IAEA 책임질 사안 아냐
거친 억지 괴담… 대한민국의 국격 실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거친 방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떠났다. 야심한 자정 무렵의 입국부터 부끄러울 정도로 거칠었고, 거대 야당과의 만남도 못지않게 거칠었다. 오로지 일본에 대한 감정적 거부감과 총선 전략 때문에 국제기구의 수장을 푸대접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가 이익은 완전히 실종돼버렸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방적이고 거친 억지 괴담만 거칠게 쏟아내는 야당의 모습은 참담하고 절망적이었다.

176개 회원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IAEA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명백한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다. 우리가 1957년부터 55개 창립 회원국으로 활동해온 최초의 국제기구라는 역사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북핵 위기에 대응하고, 24기의 원전을 안전하게 가동하기 위해서는 IAEA와의 긴밀한 협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집권을 원하는 야당도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그로시 사무총장의 언론 인터뷰 발언은 야당의 정곡을 찌른 아픈 지적이었다. 그로시 사무총장의 면전에서 야당이 IAEA의 보고서가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검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그런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한 명백한 자해(自害) 행위였다. IAEA가 알량한 분담금·기여금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전문성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는 불량집단이라는 주장은 국제사회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북한에나 어울리는 억지다. 일본보다 2배나 많은 분담금을 내는 중국이 방류를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도 무시한 궤변이기도 하다.

보고서에 명시된 ‘면책조항’(Disclaimer)에 대한 야당의 억지도 도를 넘어선 것이다. 면책조항은 모든 기술평가 보고서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필수 요소다. 그래서 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이 합리적인지를 평가해주는 보고서에도 면책조항이 등장한다. 속도제한의 합리성에 대한 평가를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를 책임져야 한다는 근거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평가 결과의 활용 과정에서의 책임소재를 밝힌 면책조항이 평가의 수준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는 일본이 다양한 정치·경제·사회·기술적 상황을 고려해서 선택한 주권적 판단이었다. IAEA가 책임질 사안이 결코 아니다. IAEA는 일본이 선택한 오염수의 방류 계획의 안전성을 국제 관행과 과학의 입장에서 평가해주었을 뿐이다. 그런 IAEA가 방류 이후에 발생할 모든 안전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가 우리 바다와 수산물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괴담’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엉터리 ‘가짜 과학’(fake science)에 혼을 빼앗긴 결과다. 해류는 오염물질을 운반해주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오히려 오염물질을 분산시켜 흩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후쿠시마의 오염수가 우리나라로 흘러온다는 주장도 비현실적인 가짜 과학이다. 후쿠시마에서 페트병 1조(兆) 개를 버렸는데 그중 1개가 제주도에 도달한다고 ‘페트병이 해류를 따라 흘러왔다’고 할 수는 없다.

물의 일부로 존재하는 삼중수소의 생물축적도 어처구니없는 가짜 과학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성능과 오염수의 분석 결과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경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진짜 중요한 것은 태평양으로 내보내는 ‘방류수’의 오염 수준이다.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유입되는 정화조 오수(汚水)의 수질을 반복적으로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본이 경제적 이유로 방류를 선택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대기와 지하수 오염의 위험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전 세계를 ‘실험실 쥐’로 만들 수 없다는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이 바로 그런 뜻이다. 우리가 미국·뉴질랜드·캐나다 대신 일본의 소수 야당과 태평양도서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도 없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