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수박’·‘숨은 좌파’ 소리 들어…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김주영 2023. 7. 1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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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민선 8기 취임 1주년 인터뷰②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서울 모든 동(洞)에서 승리하는 압승을 거두고 최초로 4선 고지에 오르며 운신의 폭을 키웠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이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쉽지 않은 1년을 보내야 했다. 여름엔 기록적 폭우로 인명 피해까지 났고, 가을엔 이태원에서 초유의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그는 사태를 수습하면서 노련한 행정을 펼쳤다는 평가와, 보다 유연한 행보가 아쉬웠다는 주문을 동시에 받았다.

오 시장은 민선 8기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 6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소 개인적이거나 정무적인 질문들에도 적극적으로 답했다. 그는 “1000만 시민이 먹고, 자고, 일하고, 즐기고 이런 모든 일상이 벌어지는 서울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면 그 이상 큰 보람은 없다”며 서울시장에 4번이나 당선된 게 ‘운명’이자 ‘행운’이라고 말했다. 시정의 제1 키워드로 ‘동행’을 내건 그는 자신이 속한 보수진영 일부로부터 이념적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 시장은 “지혜로운 사람과 정직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오 시장은 전임자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해선 “갈수록 전임 시장 비판을 더 많이 하게 된다”며 “잘못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고, 그래야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만남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이뤄진 일간지의 첫 단독 인터뷰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간 오세훈’의 철학이나 가치관 중 시정 구현을 뒷받침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인간은 ‘보람’ 때문에 산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보람을 어디서 찾는진 다를 수 있지만, 제겐 사회를 얼마나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는가가 척도다. 저는 서울시장직을 굉장히 사랑한다. 1000만 시민이 먹고, 자고, 일하고, 즐기고 이런 모든 일상이 벌어지는 도시 서울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면 그 이상 큰 보람은 없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성공이란 무엇인가’)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밭을 가꾸거나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게 성공’이라고 했다. 저는 운명적으로 서울시장을 4번이나 할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큰 행운이다. 그래서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지형에서 오 시장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서울광장 이태원 분향소를 둘러싼 논란만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풀 수는 없을까.

“우리 사회의 소위 ‘오피니언 리더’ 중엔 팍팍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서울광장에 만든 추모공간조차도 도저히 용납을 못하는 사람이 적잖다. 제가 그런 분들 사이에 끼어서 ‘샌드위치’ 신세인데… 하하. 앞서 인용한 에머슨의 시에 제가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또 있다. 흩어져 있는 문구인데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는 것’이란 구절이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찬사를 들을 순 없다. 지혜로운 사람들,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들으면 된다. 제가 가끔 ‘수박’(소속 정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주로 더불어민주당 극성 지지층이 비이재명계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이라거나 ‘숨겨진 좌파’라는 말도 듣는다. 운동을 하다 보면 제게 와서 ‘오 시장 너무 약하다, 강한 면모를 보여달라’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건 지혜로운 사람, 정직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이젠 전임자(박원순 전 서울시장) 비판을 그만할 때도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임자가 잘못한 건 집요하게 얘기해야 한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다. 가령 부동산 가격 폭등은 분명 전임 시장과 정권의 잘못 때문이다. 그걸 부인하면 안 된다. 그 얘길 안하고 어떻게 해법이 나오나. 저도 얘기하기 싫다. 그런데 시민들은 알고 계셔야 한다. 그 사람들(전임 대통령과 시장)이 서울시와 중앙정부를 ‘말아먹는’ 바람에 국민 모두가 도탄에 빠진 것 아닌가. 10년만 돈을 벌면 집을 살 수 있던 나라에서 20년, 30년을 벌어도 못 사게 된 게 누구 때문이냐. 처음엔 이성 때문에 자제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전임 시장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해놓을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 시장은 “그래도 제가 참모라면 전임자 비판은 자제하시라고 조언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한 정무직 공무원은 “(오 시장이)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시정’에 방점을 두려다 보니 그렇게 언급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2023년의 경험 많은 최다선 시장이 2006년 40대 중반의 최연소 시장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반대로 2006년 당시 선배 시장 입장에서 2023년의 후배 시장에게 조언을 한다면?

“초선 시장일 땐 제가 한 일을 알리고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 좋은 일을 하는 걸 시민들이 모르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쉽지 않더라. 언론 인터뷰를 아무리 해도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시민들은 제가 뭘 잘했는지, 뭘 소홀히 했는지 다 알고 계시더라. 이제는 정책 홍보에 지나치게 목매지 않는다. 다만 ‘손목닥터 9988’처럼 시민들이 알아야 많이 이용하는 정책은 알릴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저에게 ‘그럴 필요 없다. 세상이 다 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 시절의 시장이 지금 저에게 해줄 말도 일맥상통할 텐데,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고 할 것 같다.”
―아직 먼 얘기지만 5선 시장 도전이냐, 대권 도전이냐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하하…. (지금은) 시장 업무에 전념하겠다.”

김주영·구윤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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