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힙합 댄서로 변신한 칠곡할매들
평균연령 77세…10대들과 무대
‘칠곡할매글꼴’ 이어 또 다른 도전
“랩 하고부터 손주와 친해져 좋아”
“고추 따던 할매들. 땅콩 캐던 할매들. 우리도 랩을 해, 계속해서 뱉을래.”
“소밥 주다 개밥 줘. 개밥 주다 소밥 줘. 그래도 난 연습해, 랩을 매일 연습해.”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이번엔 래퍼로 변신해 힙합 공연을 펼쳤다.
할머니들은 대통령 글꼴로 알려진 ‘칠곡할매글꼴’ 제작자들이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운 할머니 다섯 명이 수없이 연습한 끝에 만든 인터넷 글씨체(5종)다.
칠곡군은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부 법정문화도시 ‘우리 더해야지’ 사업으로 북삼읍 어로1리 마을 공연장에서 ‘1080 힙합 페스티벌’을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공연에선 10대 청소년과 함께 어로1리 보람할매연극단 소속 할머니 9명이 힙합 복장을 하고 무대 주인공이 돼 랩을 쏟아냈다. 할머니들 평균연령은 77세다. 여든이 넘은 장병학 할머니(87)는 홀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 최순자 할머니(78)는 다른 할머니와 함께 무대를 종횡무진 누벼 200여명 관객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할머니들은 손주와의 소통은 물론, 마음만은 젊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청년층 전유물로 여겨졌던 랩에 도전하기로 했다. 연습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했다. 대구 출신 힙합 음악가인 래퍼 탐쓴(박정빈)과 성인문해강사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황인정씨(49)가 연습을 도왔다.
래퍼 탐쓴은 한 달에 다섯 차례 정도 마을회관을 찾아 할머니들에게 랩을 가르쳤다. 할머니들이 작성한 가사를 소리가 비슷한 글자를 규칙적으로 넣는 라임이 있는 랩 형태로 바꾸는 일도 도맡았다. 자신이 한 랩을 녹음해 할머니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황씨도 직접 랩과 힙합 춤을 배워 연습하며 할머니들 지도에 나섰다.
방과 후 수업은 손주들이 맡았다. 할머니와 손주들이 밤낮없이 랩을 해 이웃집 할아버지가 “실성한 사람 아니냐”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연습에 매진한 지 10개월. 할머니들은 자신의 삶과 일상, 마을을 소개하는 4곡의 랩을 완성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오르게 됐다.
정승자 할머니(78)는 “며느리도 못하고 젊은 애들만 하는 랩을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요즘에는 TV에 나오는 랩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손주와 친해지는 계기가 돼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할머니들을 초청해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물론, 각종 행사에서 랩과 힙합 춤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세대 간 소통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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