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시장 폐쇄” “자유”…또 불붙은 ‘개식용 논란’
곳곳 간판 ‘개’자 가리고 영업
상인들 “왜 범죄자 취급하나”
시민단체는 폐쇄 서명부 제출
초복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낮 12시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개시장인 이곳에는 개고기를 판매하는 보신탕 업소와 개소주 판매점 14곳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식당마다 손님 10~30명이 앉아 있었다. 손님은 60~70대가 대부분이었다.
시장에는 개고기를 삶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가게 앞에서 도마를 펼쳐놓고 개고기를 손질하거나 시장 구석에서 호스를 이용해 개고기를 씻고 있는 업주도 보였다. 대구시가 위생 등을 문제 삼아 개를 가두는 이른바 ‘뜬장’과 도살장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업소용 냉장고 안을 볼 수 없도록 올려둔 종이 사이로 개의 사체가 드문드문 보였다.
보신탕 가게를 40년간 운영했다는 한 식당 주인은 취재진을 보고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세금 낼 것 다 내고 장사하는데 왜 범죄자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신탕 업소 곳곳 간판에는 ‘개고기 판매’라는 문구에서 ‘개’자를 없앴다. 흰색 천으로 가려놓거나 노란색 테이프로 글자를 가려놓는 식이다. 한 업주는 “매년 복날에 시민단체가 찾아와 데모를 해대니 속이 시끄러워 살 수가 없어 가렸다”고 말했다.
초복을 맞아 ‘개고기 식용’ 논란이 올해도 반복됐다. 동물보호단체는 공식적으로 개고기를 팔고 있는 대구 칠성개시장의 폐쇄를 요구했고, 대한육견협회는 “개인의 자유”라며 맞섰다.
대구생명보호연대는 11일 오전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는 칠성개시장의 조기 폐쇄를 추진하라”며 이를 촉구하는 시민 서명부를 제출했다. 이들은 한 달간 3219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대구생명보호연대는 “80%가 넘는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먹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개고기 보신문화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미연 대구생명보호연대 대표는 “칠성개시장 상인들은 폐쇄 및 업종 전환을 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며 “개시장의 조기 폐쇄를 위해 남은 건 대구시장의 의지”라고 말했다.
칠성개시장은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 2019년 “개 식용 문제가 시대적 흐름이나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2020년까지 폐쇄를 약속했다. 그러나 보상 등의 문제로 미뤄지다 홍준표 시장이 취임하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홍 시장은 지난해 7월 자신의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 꿈’에 올라온 ‘개고기 식용 문제는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홍 시장님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글에 “개인의 자유”라고 답글을 달았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는 “(대구시장) 당선 이전에 ‘개고기 식용 금지’를 찬성한다고 했던 홍 시장이 당선된 후에는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애견인으로 알려진 홍 시장은 2021년 9월 칠성시장을 방문해 “개를 식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전한 바 있다.
서울에서는 지난달 28일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가 ‘개·고양이 식용금지에 관한 조례안’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회가 상위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심사 보류했다. 조례안은 원산지·유통처 등이 불명확한 개고기를 취급하는 업체에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생존권투쟁위원장은 “국민의 먹을 권리를 규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면서 “국민 누구도 개를 먹지 않겠다면 모를까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국 3대 개시장으로 불린 성남 모란 개시장은 2018년 폐쇄됐다. 부산 구포가축시장도 부산시가 도시계획으로 개시장 부지를 수용하고 상인에게 생활안정자금 등 폐업보상을 진행해 2019년 문을 닫았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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