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富의 산실, 진주 승산마을의 비결 [만물상]
삼성·LG·GS·효성 가문을 배출한 진주 승산마을 앞에는 방어산이 있다. 이 마을 부자들은 새벽 일찍 방어산 자락에 걸린 새벽별을 보면서 하루 일을 시작했다. 삼성,효성은 물론이고 LG·GS의 전신인 금성엔 이름에 모두 별이 들어 있다. 지독히도 부지런하게 일해서 벌고, 번 것은 쓰지 않았으며, 쓰지 않았으니 자연히 쌓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승산마을 허씨 가문엔 절약에 관한 전설 같은 얘기들이 전해 온다. ‘담뱃대에 담배를 재고 빨기는 하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입김만 내뿜었다.’’
▶GS 허만정 창업주의 부친 허준 선생은 모은 재산을 자식과 조상, 동네 주민, 나라의 몫으로 나누는 유지를 내리고, 마을의 궁핍한 사람을 돕는 데 7000만냥을 분배했다. 구호를 베풀 때도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했다. 춘궁기에 그저 곡식을 나눠주지 않고 방어산에 있는 돌을 집 앞마당에 옮겨 놓고 곡식을 가져가도록 했다. 노동의 대가로 가져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쌓인 돌이 마치 1만2천봉 금강산을 닮았다고 해서 ‘승산마을 금강산’으로 불린다.
▶구한말 승산마을에는 만석꾼 2가구, 5천석꾼 2가구 등 천석꾼 이상 가구가 16가구에 달했다.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지수천을 따라 비옥한 땅이 많았고, 마을이 바깥으로부터 숨겨져 있어 큰 환란을 피할 수 있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남명 조식의 실천주의 유학의 영향으로 재산을 모으는 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김종욱 진주K기업가정신 재단 부이사장은 “사농공상이 분명한 중앙에서 철저히 소외된 지방이었기 때문에 지방 재력가가 땅을 사 모으는 것도 가능했다”고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재벌들이 한국의 한 마을에서 무더기로 나온 데는 교육의 역할도 컸다. 식민지 암울한 때에 허씨 집안이 땅을 내놓아 1921년 지수보통학교가 설립됐다. 산 너머 함안, 강 건너 의령과 경계를 이루는 이 신식 학교에 주변 인재들이 몰렸다. 이 마을에 살았던 LG 구인회, 의령군의 삼성 이병철 창업주가 같이 어울려 운동하고 공부했다. 1980년대 100대 기업인 중 이 학교 출신이 33명이다.
▶이 기적 같은 마을 이야기가 궁금해 세계 47국 150여 명이 진주에 모여 국제포럼을 열었다. 이 마을이 배출한 기업가들이 이룬 매출액은 연간 800조원에 이른다. 승산마을은 다시 못 올 역사가 아니다. 자유로운 기업가정신을 권장하고 인재가 모이면 제2, 제3의 승산마을이 대한민국에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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