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떨어졌다…아버지 비극이 아들에게로

강현석 기자 2023. 7. 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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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청노동자
안전시설물 없이
홀로 선반 해체하다
2.2m서 떨어져 사망
20년 전 아버지도
건설 현장 추락사
“노동 환경 그대로
중대재해 처벌을”

“고인의 아버지 역시 20년 전 노동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 노동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의 한 병원 장례식장. 분향소에는 사망 이후 6일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A씨(43)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조문객이 없어 썰렁한 분향소는 유족과 노동단체 관계자 몇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한 조선 관련 업체에서 취부공(철판을 임시로 살짝 붙이는 가용접을 하는 노동자)으로 일하던 A씨는 지난 3일 오전 11시10분쯤 추락사고를 당했다. A씨는 대형 조선소에 선박 블록을 제작해 납품하는 회사의 하청업체 소속이다.

A씨는 사고 당시 선박 블록에 부착된 ‘도구 적재 선반’을 용접기로 떼어내는 작업을 했다. 무게 230㎏인 선반 위에 올라 해체 작업을 하던 A씨는 갑자기 선반이 무너지면서 2.2m 높이에서 추락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이틀 만인 지난 5일 낮 12시쯤 뇌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A씨는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추락사고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시설물 등도 없었다는 게 현장을 살펴본 유족들의 주장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을 보면 100㎏ 이상의 중량물을 해체할 때에는 작업계획서를 수립하고 지휘자의 입회하에 작업을 해야 한다.

A씨 유족이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미장공이었던 A씨의 아버지(당시 56세)는 2003년 11월29일 서울 관악구의 한 건설 현장 고층에서 일하다 추락해 숨졌다. 아버지가 숨진 이듬해인 2004년부터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A씨에게 아버지와 똑같은 비극이 20년 만에 반복됐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A씨와 아버지가 같은 유형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노동 현장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22년 전국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874명이 숨졌다. 이 중 가장 많은 322명(36.8%)이 A씨 부자처럼 ‘떨어짐(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A씨 사망 이후 회사 태도도 논란거리다. 재하도급 업체인 A씨 회사는 사고 당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사고경위서와 근로계약서 등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원청에서 주지 말라고 했다”며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유족은 회사를 직접 방문하고서야 근로계약서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 동생은 “아버지가 추락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어려서 구체적인 상황 파악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런데 형까지 같은 사고로 숨져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슬픔을)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면서 “우리 가족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과 노동단체는 11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사망과 관련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은 “2대에 걸친 A씨 부자의 중대재해 비극은 우리 사회가 중대재해에 얼마나 심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면서 “원청업체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사업주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라”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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