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교섭길 열리나…"방송작가 노동, 교섭의제로 충분"

김예리 기자 2023. 7. 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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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서울지노위, KBS 방송작가유니온 교섭 회피에 제동
"난감해" 반복한 KBS, "공고하면 왜 안되나" 거듭 물은 위원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 1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KBS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의 심문회의는 방송사들이 방송작가들과 교섭에 나설 의무를 판단한 첫 회의였다. 방송작가지부의 교섭권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심문위원들의 발언이 나왔다. KBS가 거부 이유로 '방송작가특별협의체'를 강조하는 입장이 노동3권 불인정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노동위가 방송작가의 노조할 권리를 확인한 20년 만의 판례라는 평가다.

서울지노위는 10일 오후 1심 판정에서 언론노조가 KBS를 상대로 '방송작가지부의 교섭권을 인정하고 지부를 포함한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를 다시 하라'며 제기한 시정신청 사건 심문회의를 열었다. 앞서 KBS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교섭요구 확정 공고를 하면서 언론노조 KBS본부와 방송작가지부 공문 가운데 언론노조 KBS본부 관련 공문만을 반영했는데, 언론노조는 이것이 KBS 측의 교섭 회피라며 시정명령을 신청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사진=미디어오늘

시정신청을 제기한 언론노조 측 인사로는 언론노조 소속 노무사와 변호사,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염정열 방송작가지부장이 자리했다. 사측으로 KBS 측 노무사 등 대리인 2명과 박철배 KBS 노사협력주관이 참석했다.

심문위원들은 KBS 측에 언론노조의 방송작가지부를 포함한 공고를 거부하는 “실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거듭 물었다. KBS가 추가로 받은 공문은 단지 절차적 이유로 공고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인지, 또는 방송작가지부와 교섭을 거부하기 때문에 공문을 받지 않은 것인지를 가린 것이다.

KBS 측 답변은 질문에 따라 엇갈렸다. KBS 측 대리인은 “법에 따라 요구된 대로 토씨 하나 안 빼고 공고했다”며 언론노조가 보낸 첫 교섭요구 공문을 그대로 공지했으므로 시정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 공익위원은 이에 “그러니까 만약 노조원 수를 오타를 냈다(고 가정하면), 그건 수정할 수 있지 않나. 수정 못하고 처음에 낸 게 끝이며 오타는 너희 사정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언론노조가 언론노조 KBS본부 관련 교섭요구 공문에 이어 방송작가지부 공문을 보낸 것을 모두 반영하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는 취지다. KBS 측 대리인은 “실수였다고 해도 제2, 제3노조도 보는 상황에 이걸 지금 수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언론노조 측 대리인은 이를 두고 “KBS 측 해석은 어떤 수정 요구나 추가 교섭참여 요구를 하더라도 맨 처음 것만 받아들이고 뒤의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가 깔린 것 같은데, 언론노조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교섭참여 기간 내에 추가 요구를 했다. 이마저 배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근거없이 제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의체로 충분? 공전했기에 교섭 요구하는 것”

'방송작가지부와 교섭을 거부하는 의도가 담겼느냐'는 질문에 KBS 측은 “(방송작가지부 교섭권은) 쟁점 사항이 아니라 따로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다”면서도 “언론노조와 방송작가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특별협의체를 2020년부터 구성한다는 것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말씀”이라고 했다. KBS 측의 이 발언에 참관인석에 앉은 방송작가지부 조합원 3명은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방송작가지부는 KBS와 MBC, EBS와 특별협의체를 구성했지만, KBS 측이 거듭 담당자를 변경하고 합의안을 거부하면서 3년간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협의체는 사측이 대화를 지연시켜도 어떤 법적 구속도 받지 않지만 KBS가 단체교섭 틀 안에서 불성실하게 임하기를 반복할 경우 교섭을 해태한 노조법 위반(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신선아 변호사는 “특별협의체를 운영한 적 있지만 정식 단체교섭이 아니라서 몇 년을 공전했으며 합의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정식 단체교섭을 요청하는데 지금 (KBS) 입장은 교섭과 단협 체결 요구 절차에 응하지 않겠다고 전제한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KBS가 '쟁점 삼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심문위원이 먼저 나서서 방송작가의 노조법상 권리를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심문위원은 “지금 방송작가의 근로조건은 사실 교섭 의제로 삼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상황”이라며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 문제가 왜 이렇게까지 중요한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방송작가지부의 단체교섭권이 명백한 만큼 이를 위한 공고를 비롯한 절차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KBS 여의도 사옥.

실제 한 산별노조 내 다른 지부가 각각 교섭요구 공문을 보내 모두 받아들여진 사례도 언급됐다. 행정안전부는 민주노총 공공공운수노조 산하에 있는 대전지역지부와 국가공무직지부가 각각 교섭요구한 것을 모두 반영해 공고하고 응한 바 있다. 그러나 KBS 측은 “이미 공고가 나간 상황에 (첫) 공문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KBS 측이 방송작가지부의 교섭요구를 포함해 공고하길 거부하면서도 이렇다 할 근거를 대지 못하면서 심문위원들의 질문과 답변이 헛돌았다. 한 위원이 “(교섭요구) 일자는 6월15일로 하고 노조원 숫자를 방송작가 65명을 포함해 2418명으로 표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제안하자 KBS 측은 “여러 번 말씀드려 죄송하긴 한데 어느 노동조합이든 조합원을 잘못 표시해 보냈다고 해도 똑같이 (거부할 것)”이라며 “처음 받은 대로 보고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심문회의 의장은 “그만하셔도 될 듯하다. 지금 그 얘기 최소 6번 이상 한 것 같다”고 발언을 중단시키면서 회의는 마무리됐다.

한 사용자위원은 언론노조가 언론노조 KBS본부 교섭 관련 공문과 방송작가지부 교섭 관련 공문을 따로 보낸 것에 대해 “언론노조 산하에 있는 지부인데 어떻게 언론노조 KBS본부와 같이 협업을 안 하고 노조끼리 흔드는 모습을 보고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4시간여 뒤 서울지노위는 문자메시지로 '노동조합의 시정신청을 인정함을 알려드린다'고 통보했다. KBS는 결정문을 송달받은 뒤 2주 내에 이를 이행해야 하며, 불복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가 사건을 재심하게 된다. KBS는 11일 시정명령을 이행할지 묻자 “결정문을 받고 내부 검토 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20년 만에 다시 빛 본 작가 노조할 권리
6년간 노동자성 다툼이 바탕 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이 지난 2021년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번 판정은 노동위가 방송작가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20년 만에 다시 인정한 판례로 꼽을 수 있다. 마산MBC 구성작가들은 2002년 노조법상 노동자성 인정 다툼을 시작해 중노위에서 이를 인정 받았으나 서울고등법원이 2003년 이를 뒤집었다.

이후 방송작가지부가 2017년 출범했고 MBC 뉴스투데이 방송작가들은 부당해고와 노동자성 다툼에 나서 중노위와 법원에서 이를 인정받았다. 방송작가지부의 청원으로 2021년 말 고용노동부가 지상파 방송3사 작가 152명의 노동자성을 확인했다.

당사자들의 부당해고와 노동자성 다툼과 인정 판례도 잇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방송작가지부의 노동3권을 전제한 판정이 나왔다는 평가다. 교섭이 이뤄질 경우 KBS의 방송작가는 물론 다른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에 미칠 파장도 크다.

방송작가지부는 11일 카드뉴스를 통해 “방송작가도 단체교섭 권리가 있는 당당한 노동자”라며 “KBS는 조속히 지노위 판정에 따라 교섭요구 노조 확정공고에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를 명시하고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KBS는 시정명령 이행 여부를 놓고 “결정문을 받고 내부 검토 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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