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나토 정상회의 직전 스웨덴 가입 반대 철회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튀르키예(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일 년 넘게 고수했던 스웨덴의 나토 가입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튀르키예의 유럽연합(EU) 가입까지 선조건으로 거론하며 마지막까지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0일(이하 현지시각) 나토 정상회의가 열릴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튀르키예와 스웨덴 정상 회동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 튀르키예 의회에 제출하고 비준을 위해 의회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웨덴의 나토 합류가 "이 중요한 시기에 나토 동맹 안보를 강화할 역사적 단계"라며 환영했다.
스웨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 핀란드와 함께 지난해 5월 오랜 군사적 비동맹 원칙을 깨고 나란히 나토 가입을 신청했지만 해당 국가 내 튀르키예 단체 활동 등을 문제 삼은 튀르키예의 반대로 가입이 1년 넘게 지연된 상태였다. 핀란드는 기다림 끝에 올해 4월 나토에 합류했지만 올초부터 연이어 쿠란(이슬람 경전) 소각 시위가 터진 스웨덴은 시위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튀르키예와 아랍 국가들의 분노를 사며 가입이 재차 지연됐다. 나토 가입을 위해선 기존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나토 쪽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스웨덴 가입을 마무리짓기 위해 지난달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이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등 애썼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합의 직전까지 새로운 조건을 내세우며 유럽 회원국들을 당황하게 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그는 10일 빌뉴스로 출발하기 직전 연설에서 "우선 튀르키예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면 우리도 스웨덴에 나토로의 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EU 가입 신청을 한 튀르키예는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가입 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졌다. EU 집행위원회 쪽은 나토와 EU 가입 문제는 "별개의 과정"으로 서로 연결지을 수 없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에 즉시 선을 그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새 조건을 제시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돌연 반대를 철회한 데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튀르키예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스웨덴 가입을 끝까지 반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체는 이미 튀르키예가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서방 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반대 의사를 철회하지 않았다면 튀르키예가 나토에 충실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강화됐을 거라고 짚었다. 거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이번 회담에서 동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오히려 튀르키예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이었다는 의미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튀르키예는 반대 철회를 통해 숙원이었던 F-16 전투기 판매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튀르키예의 결정을 환영하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튀르키예와 함께 유럽 및 대서양 지역의 방위와 억지력 강화를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튀르키예가 요구해 온 F-16 전투기를 판매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막판까지 새 조건을 들이민 것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라는 관측이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아슬리 아이든타스바쉬 객원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이것이 에르도안의 "협상 스타일"이라며 그가 EU 가입 문제를 거론한 것은 "튀르키예에 F-16을 팬매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유럽이 내놓길 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1~12일 열리는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주제 중 하나로 거론됐던 스웨덴의 나토 가입 길이 열렸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다룰 다른 주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관계 설정과 안전 보장 방법은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의제가 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쪽은 이번 회의에서 나토 합류에 대한 명확한 신로를 받길 원했지만 9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히며 선을 그은 상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전쟁 중 합류할 경우 나토의 집단방위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나토가 직접 대립하게 되고 전쟁이 끝난 뒤 합류할 수 있다는 명확한 신호를 줄 경우 러시아가 이를 막기 위해 전쟁을 질질 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은 채 나토가 어떤 형태로 전쟁 뒤까지 안전 보장을 제공할 것인지가 주요 논의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 나토의 동쪽 측면을 강화하는 대규모 지역 계획이 부활할 것으로 보이며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 증대안도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토는 현재 회원국들의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높이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향후엔 최소 2%를 지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만 현 31개 회원국 중에서 올해 기존 목표치인 2%를 달성할 것으로 보이는 국가는 미국, 영국, 헝가리, 라트비아 등 11개국에 불과하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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