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났나"…처음 본 '극한호우'에 가슴 철렁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영등포구·구로구 등지에 '극한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처음 발송될 정도로 많은 비가 짧은 시간에 쏟아지면서 시민들은 작년 8월 폭우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 지하철 신대방삼거리역 1번출구 인근 노상에서 장사하는 박태순(61)씨는 "가게가 노상에 천막으로 돼 있는데 천막이 뚫리는 줄 알았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오늘 장사 공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비는 오후 3시께부터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막상 긴급재난문자는 비가 잠잠해지니까 왔다"고 의아해했다.
대림역 인근에서 긴급재난문자를 받은 서모(28)씨는 "차 안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져 당황했다"며 "도림천은 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이 중간부터 물이 잠겨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고 '하천 단속'이라 쓰인 형광조끼 입은 분이 산책로를 통제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날 오후 3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9호선 샛강역에 내린 직장인 주모(29)씨는 "사람들이 출구에서 모두 나가지 않고 기다리길래 보니까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며 "우산을 쓰고 잠깐 집에 가는데도 머리만 빼고 홀딱 젖어버렸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집으로 향하던 주씨는 30분 뒤 긴급재난문자를 받았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1동 일대에 1시간에 72㎜ 이상 비가 내리면서 이날 오후 4시 서울 동작구 상도·상도1·대방·신대방동, 영등포구 신길·대림동, 구로구 구로동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소셜미디어에는 '긴급재난문자 알림 때문에 매우 놀랐다. 침수가 우려된다'거나 '도림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작년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글이 줄을 지었다. 트위터 트렌드에는 '하늘에 구멍', '도로 침수'가 오르기도 했다.
기상청은 이달 15일부터 비가 '시간당 50㎜', 그리고 '3시간에 90㎜' 이상 내리면 수도권을 대상으로 극한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직접 보내기로 했다.
이날 서울 동작구, 구로구 일부 지역에 발송된 긴급재난문자로 시민들은 처음 '극한호우'라는 기상 용어를 접하게 됐다.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구로동에 있는 구로역 광장은 이날 오후 5시께 광장 대부분이 물에 고여있었다.
인근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유모(76)씨는 "가게 옆 건물의 옥상 우수관에서 물이 쏟아져 곤혹스러웠다. 가게 옆 배수관을 계속 뚫었다"고 말했다.
구로기계공구상가단지에서도 대부분의 가게가 좌판을 접고 가게 입구 앞에 방수 천막을 둘러 폭우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단지의 조합 이사인 전동훈(64)씨는 "작년에도 일부 지하 가게들이 물이 잠기는 등 피해가 있어서 오늘은 사전에 배수펌프를 가동하는 등 일찍 대비했다. 1시간 넘게 비가 퍼부어 단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구로동의 한 주유소 직원도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 쏟아졌다. 배수로가 조금만 막혀도 비가 넘치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했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에서 정육점 운영하는 정하운 씨는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처음으로 목격한 폭우였는데 무서웠다"며 "작년과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 해당 지역에 사는데 안내받지 못한 시민들은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영등포구 신길동에 살지만 서대문구에서 일하고 있던 박모(30)씨는 "문자를 받지 못해 우리 집이 극한호우 문자 발송지역이라는 것을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혹시 내 집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거주민에게는 문자를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니느냐"고 지적했다.
극한호우 지역뿐 아니라 이날 오후 서울 전역엔 말 그대로 '물폭탄'이 떨어졌다.
임모(28)씨는 "혜화역 주변 카페에서 오후 3시께 커피를 사 들고 나오다가 우산을 쓰기 힘들 정도로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결국 커피를 쏟았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모(45)씨는 "가산디지털단지 일대에 장대비가 내려 도로와 건물 주변에 시냇물처럼 물길이 생겼다"면서 "오후 2시30분부터 1시간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졌다"고 전했다.
쏟아지는 비에 운전하던 이들은 속도를 줄였고 지하철과 버스는 곳곳에서 연착됐다.
서울의 한 마을버스 기사 김모(58)씨는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평소보다 더 천천히 운전해야 했다"며 "손님들도 타고 내릴 때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다 보니 운행 시간이 다른 때보다 10분 이상 지체됐다"고 말했다.
지하철 경의중앙선과 2호선을 이용한 직장인 오모(33)씨는 "열차에 타는 사람마다 모두 '물에 빠진 생쥐' 꼴이라 나까지 젖었다"며 "비가 와서 그런지 열차가 자꾸 지연됐다. 오후에 미팅이 있었는데 20분 지각했다"고 했다.
오후 3시께 서울 서초구 지하철 서초역 인근을 운전하며 지나던 주모(56)씨는 "강남을 지나는데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해 많이 밀렸다"고 했다.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 택시를 앱으로 호출한 장모(30)씨는 택시가 잡히지 않아 20분 이상 폭우 속에 기다려야 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한때 폭우로 중단된 데 이어 서울 주요 도로 곳곳이 물고임으로 통제됐다.
오후 5시30분께 서울 용산구에서 동작구 노량진동 자취방으로 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이모(24)씨는 "평소 10분이면 가는 길인데 한강대교 위에서 20여분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임순현 김잔디 송정은 김정진 장보인 이미령 안정훈 이율립 최원정 최윤선 기자)
s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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