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바깥길]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겨레 2023. 7. 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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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바깥길]사회학자들이 마을을 찾아 이 긴장감의 정체를 분석했다. 이른바 마리엔탈 실업자 연구다. 취지는 간명하면서 심오했다. 실업이란 단지 숫자를 세는 문제가 아니다. 돈 문제만도 아니다. 개인과 가족의 생활 전체를 흔들어대는 집단적 사회적 고통을 의미한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마을 실업자들을 직접 만나 끊임없이 묻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록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이상헌의 바깥길ㅣ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오스트리아 빈을 벗어나 남쪽으로 달리면 들판이 한없이 열리다가 난데없이 높이 솟은 빌딩이 보인다. 그 밑으로 자그마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이름은 그라마트노이지들이다. 이름은 길고 복잡하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아무것도 없을 법한 곳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라는 뜻이란다. 거기에 약 3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 도시보다는 마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잣대 삼아 보자면 이 마을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마을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꽃밭의 재잘거림보다는 공장의 허연 연기가 거칠게 맞이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한때 공장마을이었다.

19세기 대규모 섬유공장이 들어서면서 이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마을 안쪽에 자리한 마리엔탈이라는 곳에 거대한 공장이 들어섰고, 마을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공장에서 일하거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고객 삼아 장사를 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 같이 기대었다. 하지만 공장이 무너지자 모든 것이 같이 무너졌다. 1930년대 공황이 닥치자, 섬유공장은 파산하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공장 연기가 사라지자 마을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다. 깜깜했다. 먹고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곧 터져버릴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사람들을 더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사회학자들이 마을을 찾아 이 긴장감의 정체를 분석했다. 이른바 마리엔탈 실업자 연구다. 취지는 간명하면서 심오했다. 실업이란 단지 숫자를 세는 문제가 아니다. 돈 문제만도 아니다. 개인과 가족의 생활 전체를 흔들어대는 집단적 사회적 고통을 의미한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마을 실업자들을 직접 만나 끊임없이 묻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록했다.

시작부터 어려웠다. 고통의 그림자는 두텁고 길었다. “고양이나 개 한마리가 사라지면, 그 주인은 차마 신고하질 못했다. 주인은 분명 그 누군가 그 동물을 먹어버렸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게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사라진 마을에는 인간의 영혼도 증발했다. 만사에 힘을 잃게 하는 무기력함은 역설적으로 힘을 짜내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집 안팎으로 주먹질이 늘었다. 아이들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 모래탑을 굳건히 받들고 있던 돌덩이 하나를 빼낸 것처럼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남은 것은, 일자리란 돈만 아니라 삶이고 자존감이고 사람의 연결고리라는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또 다른 깨달음은 섣부른 ‘낙관적 혁명론’의 어리숙함이다. 당시 대량실업이 생기자 이것이 대규모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거대한 정치적 물결이 생겨나고 체계적 또는 제도적 급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고도 뒤따랐다. 실업은 ‘전복적 행위’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업의 고통이 크고 넓을수록 비관과 우울의 상태가 깊어졌다. 잃을 것은 사슬뿐이니 두 손 불끈 들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저 멀어져 가는 밥줄의 사슬 끝을 바라보면서 더 암울해했다. 사회학자 제임스 데이비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사슬을 잃을 것인가, 삶을 잃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사슬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마르크스가 애끓어할 일지만 삶의 현실은 그러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그때를 기억한다. 추억은 기억하되, 고통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래서 최근 실업자가 늘어나는 기미를 보이자, 이 마을은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사업을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장기실업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8주 정도 훈련 과정을 거쳐 민간기업에 취직하거나 마을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민간기업에 취직하면 고용보조금을 주는데, 어떤 경우든 월급은 최저임금 이상 받도록 했다. 대부분이 사회적기업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강제성은 없다. 본인이 이 프로그램 참여를 원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계속 받으면 된다. 일종의 일자리 보장 사업인데, 공식 이름은 ‘마리엔탈 일자리 보장 시범사업’이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의지가 모두 잘 담긴 이름이다. 마을의 온갖 정책도 조율돼 이 사업을 지원한다. 일자리 만들자고 온 마을이 소매 걷고 나선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이 든다. 1인당 연평균 3천만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마을은 이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도 있는데다 결과도 좋기 때문이다. 1930년대 마리엔탈 실업자 조사연구를 틀로 삼아 일자리 보장 프로그램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포괄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은 1%포인트 이상 줄고 노동자의 수입은 당연히 크게 늘었다. 사회심리적 지표도 현저히 좋아졌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꽤 괜찮은 투자였던 셈이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 참여자에게 쓰는 평균 지출액과 실업자를 위한 실업급여 지출액은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미국 잡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업 책임자는 “이건 거의 슬램덩크 수준”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일자리 보장 사업을 총괄하는 사무실은 옛 섬유공장 터에 자리잡았다. 역사와 경험이 그렇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 사업을 주도한 마을 시장은 마리엔탈의 역사적 경험으로 석사 논문을 쓴 사람이다. 그의 말은 거침없다. “당신도 애덤 스미스는 알겠지. 그 양반은 항상 시장이 옳다고 했단 말이야. 일자리가 없으면 돈을 덜 받고 일하면 된다고 하겠지만, 완전히 틀린 소리야. (…) 일자리 자체가 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스미스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겠으나, 시장 의지는 그만큼 굳건하다. 이 마을의 야심 찬 사업은 적어도 내년 말까지 계속된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누구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 가면 일자리를 아이 키우듯 한다. 좋은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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