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책은 숨 쉬듯 읽고 또 읽어라
아버지 앞으로 책이 우편으로 왔다. 펴보지 않고 만지기만 하다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봉투를 건네주며 책값을 우편환으로 끊어 보내라고 했다. 때로 선물이 들어오면 아버지는 같은 품목으로 사서 꼭 보냈다. 그러나 책 선물은 처음이었다.
며칠 지나도 책상 위의 책은 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한 달쯤 지나 책을 보니 물에 불은 듯 두꺼웠다. 선물 받은 책은 군데군데 볼펜으로 끝도 없이 메모가 되어 있었다. 여백이 없는 데는 메모한 종이를 덧대 여러 장을 겹쳐 붙여 본래 보다 두 배는 두꺼웠다. 책값을 보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만지는 걸 본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읽기 전에 생각하고, 읽으면서 생각하고, 읽고 나서도 생각해라. 쉽게 읽은 책은 쉽게 빠져나간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 읽을 책을 찾아 읽어라.”
아버지는 철저하게 발췌독(拔萃讀)했다. 닥치는 대로 읽는 남독(濫讀)이지만,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바로 펼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제목으로 책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를 먼저 생각해본다고 했다. ‘다리’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소재의 일반성을 먼저 생각해본다. 집 앞의 징검다리부터 금문교, 오작교까지를 떠올린다. 그런 다음 다리의 원관념, 즉 ‘건네준다’를 생각하면 우체부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까지를 떠올 릴 수 있다. 다리를 ‘이편에서 저편의 더 너른 공간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산물’로 보고 내가 겪었든 겪지 않았든 상상해보며 저자만이 경험한 ‘특수성’을 염두에 둔다.” 아버지는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생각한 부분은 빠르게 읽고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은 정독하며 생각을 메모했다. 반드시 완독(完讀)했지만 자연스레 속독(速讀)했다. 아버지는 “독서는 내가 그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내 지식을 점검하고 그가 생각한 걸 취하는 일이다.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서 하는 거는 완독해야 알 수 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띄엄띄엄 가려서 읽는 적독(摘讀)이다”라고 당신의 독서법을 알려줬다. 그날 이후 내 평생의 독서법이 됐다.
대학 다니는 아들 방에 들른 아버지는 앞의 몇 장만 읽은 책을 밑동이 위로 가게 거꾸로 꼽아 놓았다. 개강하면 휴강이 이어지는 당시에는 완독한 책이 없었다. “끝까지 읽지 않으면 숲에 들어가지도 않고 겉에 있는 나무만 보는 것과 같다. 그렇게 읽었다고 쌓아두고 과시하는 적독(積讀)은 졸렬하다”라고 말한 아버지는 남에게 몇 개 나무 이름만 외워 얘기하는 알량한 내 공부를 지적했다. 그날 ‘생각 없는 독서’를 싫어한다며 꺼내온 고사성어가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뜻이다. 책이 닳고 닳을 때까지 여러 번 읽을 만큼 학문에 열중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유래했다. “만년에 ‘주역(周易)’을 좋아한 공자가 정리하며 읽느라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대나무 조각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죽간(竹簡) 책을 읽은 공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읽어 책 묶은 끈을 새것으로 바꾼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도 공자는 “내가 몇 년 더 살 수 있다면 주역의 내용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독서는 없어지지 않을 거다. 독서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부지런하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게 독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관점이 다르니 반드시 읽어야 너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독서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세종 임금은 어린 시절 같은 책을 백번씩 읽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으려면 널리 배우고, 질문하며, 생각하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일권오행(一卷五行)’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드시 생각하는 독서여야 한다. 글자 너머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며 숙독(熟讀)하기를 당부했다.
아버지는 “고기도 오래 씹어야 맛있듯이 책 읽기도 오래 음미해야 맛을 느낄 수 있다. 생각 거리를 주는 좋은 책을 골라 숨 쉬듯 꾸준히 읽고 또 읽어라”라고 다시 강조했다. 독서는 습관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책 읽는 습성(習性)은 배우고 익혀야 버릇이 든다. 손주들이 글을 깨우치지 않았더라도 일찍 가르칠수록 좋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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