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고집하는 '물가 2%'는 공격적 목표일까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7. 11. 17: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마켓톡톡
인플레 또다른 축 정부 재정
총수요 자극해 물가에 영향
“재정으로 인플레 3% 추가” 논문도

한국은행이 1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양국이 물가상승률 목표를 2%로 유지하는 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멀기만 하다. 그런데 이 목표는 세계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재정을 집행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유효한 걸까. 최근 "정부의 재정지출로 이 기간 최대 3%의 추가 물가상승이 있었다"는 논문이 호주에서 발표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일 BOK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토마스 사전트(오른쪽) 교수 등과 정책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6월 14일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동결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이날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이 우리의 물가 목표치인 2%로 낮아져야 한다"며 금리 인하의 조건을 내걸었다.

파월이 PCE에 초점을 맞춘 건 인플레이션이 임금(소득), 상품의 가격(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보다 '개인의 지출'에서 관측되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 의료비 보조금 등은 국내총생산(GDP)과 CPI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PCE에는 포함된다.

#2.지난해 4월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에서 재정과 물가를 둘러싼 논의가 있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청문회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없도록 추가경정예산의 재원을 국채 발행으로 마련하면 되지 않겠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이창용 총재는 "국채 직매입이 아니라면 통화량에 변동은 없다. 다만, (추경이) 총수요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라고 답했다. 총수요가 늘어나면 물가가 상승한다.

#3.올해 1월 전미경제학회에서는 연준의 물가 목표를 2%보다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물가를 목표인 2%까지 빠르게 낮추는 과정 자체가 가계와 기업에는 횡포"라고 질타했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려고 하면 경제에 부담이 크다"며 새로운 목표로 3%를 제안했다.

■ 재정적 인플레의 배경=이같은 주장을 종합해 보면, 정부의 재정지출은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를 매입하지 않는 한 통화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정지출은 물가상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재정 보조를 받은 경제주체의 수요가 높아져 물가가 상승한다. 경제주체의 지출에서 재정적 인플레가 포착된다는 거다.

특히 팬데믹 기간 정부의 재정지출이 지나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 문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세계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양책을 썼다. 미국의 부양책 규모는 GDP의 25%에 달한다. 호주 정부는 GDP의 16%를 부양책으로 쓰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5번째로 많은 돈을 썼다.

크리스 머피 호주국립대(경제학) 교수는 지난 6월 '코로나19 시대의 재정정책'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호주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부양책 규모는 1달러의 피해가 발생하면 2달러를 재정으로 보상하는 수준이었다.

논문은 이같은 보상 수준을 '공격적 재정 지원(aggressive fiscal support)'이라고 표현했다. 머피 교수는 호주의 물가 상승률을 코로나19가 없었을 경우, 코로나19가 발생하되 정부의 인위적 부양책이 없었을 경우, 정부의 공격적 재정 지원이 있는 경우로 나눠 계산했다.

그 결과, 머피 교수는 호주 정부의 부양책으로 물가상승률이 3.0%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재정적 인플레로 추가 발생한 3.0%의 물가상승률을 금리인상 등 통화정책으로 잡으려면 과도한 '공격적 긴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이 팬데믹 이후에도 잡히지 않고 있는데, 한축이 시장지배적 지위 기업들의 과욕, 일반 기업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과다 계산으로 인한 가격 책정 오류 등 '탐욕 인플레'라면, 다른 한 축은 정부의 과다 재정지출로 볼 수 있다.

■ 고민 깊은 한국=통계청 소속 국립연구기관인 통계개발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우리 정부의 부양책 규모는 2020년부터 2022년 5월까지 8회에 걸쳐 183조3000억원이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GDP가 1969조원이므로 GDP의 8~9% 수준을 경기 부양에 썼다.

호주 시드니의 한 은행 지점 앞에 걸린 부동산 대출 포스터. [사진=뉴시스]

호주만큼 많지는 않지만, 무시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6월 1일 '팬데믹 이후의 정책과제' 국제 콘퍼런스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마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에게 질문하며 "신흥국의 경우 정부부채 거품이 존재하는 가운데 추가로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하면 정부부채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재정적 인플레의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국은행은 2003년 '재정적 물가이론: 이론과 적용가능성' 보고서에서 "과거의 인플레이션이 주로 통화적 요인에 의해서 유발했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런 건 아닐 것"이라며 재정적 인플레 가능성을 주목했다. 보고서는 2001년 당시 여야가 모두 재정적 인플레를 사전에 방지하는 법안을 준비했었던 과정도 자세히 소개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