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왜 이렇게 잘 써?”… 형사의 한 마디, 소년범 마음 녹였다
“누구도 저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고 범죄자 취급했는데, 형사님을 뵙고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진심으로 다짐했습니다.”
최근 제주서부경찰서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받는 사람은 여성청소년과 여청수사팀 소속 임준일 (37) 경사, 보낸 사람은 제주소년원에서 수감 중인 A군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초 소년원 조사실에서 딱 한 번 본 사이였다. 임 경사는 촉탁수사 의뢰를 받고 A군을 조사하러 갔었다. 촉탁수사는 타 지역 수사기관에 일정한 사실의 수사를 의뢰하는 것으로 일종의 공조수사를 말한다. 당시 임 경사는 A군에게 조언을 건넸는데, 이에 감동 받은 A군이 자필 편지로 감사 인사를 전해온 것이었다.
임 경사는 당시 A군에게 범죄 사실만 묻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덩치가 큰 A군에게 “나도 운동 좋아한다. 벤치프레스 얼마나 치냐”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공감대가 형성되자 A군은 금세 벽을 허물고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 경사는 A군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단 이야기를 듣고 더 마음이 쓰였다. 임 경사 역시 홀어머니 밑에서 크며 힘들게 입직했기 때문이다. 임 경사는 트럭 운전과 막노동을 전전하며 공부를 병행했고, 18수 끝에 경찰에 임용됐다고 한다.
임 경사는 선배로서 A군에게 조언을 했다. “이곳에서 나가면 뭐 할 거냐” “여기는 멈춰 있는 시간이다. 껄렁껄렁한 걸음걸이와 나쁜 친구 모두 이곳에 두고 나가라” “어떤 아버지가 될지,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사회에 이바지할지 생각해 봐라.” 사건 조사는 20분 만에 끝났지만, 임 경사가 A군에게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느라 대화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격려와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A군이 스포츠 지도에 관심이 있다며 진로 상담을 하자, 임 경사는 그의 꿈을 응원하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너 스스로 깨끗해야 한다”는 따끔한 한마디도 보탰다. 특히 조사 때 임 경사의 눈길을 끈 건 해병대에서 볼 법한 A군의 필체였다. 임 경사가 “글씨를 왜 이렇게 잘 쓰냐”고 묻자, A군은 “글씨 연습을 하며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임 경사는 “그래 뭐든지 도전해보라”며 격려했다.
따뜻한 관심은 A군의 마음을 움직였다. A군은 조사를 마치고 한 달 뒤 임 경사에게 손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편지에서 “저는 어렸을 적부터 비행을 일삼고 삐뚤게 살아왔습니다”라며 “저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것에 대해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한 번밖에 뵙지 못했지만, 나가서 꼭 성공해서 좋은 곳에서 뵙고 싶습니다”라며 “형사님은 제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멋있으시고 본받고 싶은 분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요즘 날씨가 더워졌는데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항상 힘내십쇼! 임준일 형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A군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편지 내용은 경찰서 전 직원에게 공유됐다. 임 경사는 조선닷컴에 “범죄 사실도 중요하지만 소년범은 재범 방지가 제일 중요하다”며 “A군이 자라온 환경이 나와 비슷하고 딸을 둔 아버지로서 아들 같은 마음에 잔소리가 좀 길어졌다”고 했다. 임상우 제주서부경찰서장은 “앞으로도 단순히 범죄 예방과 단속에 그치지 않고 청소년 선도 등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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