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예측 실패한 '뒷북 방역'…3400만명분 폐기 불가피

박정렬 기자 2023. 7. 11. 17: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세종인 XBB 변이 백신 동절기 백신으로 선정 결정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상반기 코로나19 고위험군 사전예약과 당일 접종이 시작된 15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 코로나19 백신이 준비돼 있다. 접종 대상은 2가백신 접종자 가운데 12세 이상 면역저하자와 의료진이 접종을 권고한 65세 이상 고령자이며, 예약 접종은 29일부터 시행된다. 전국의 위탁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접종이 가능하며, 코로나19 예방접종 누리집(ncv.kdca.g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2023.5.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코로나19 추가 접종(부스터샷)에 활용되는 BA.1과 BA.4/5 기반 코로나19 백신이 현재 우세종인 XBB 변이에는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방역 당국이 다가오는 가을~겨울 유행에 대비해 '새 백신'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백신 부작용 우려에 따른 접종률 하락과 유효기간 만료가 겹치면서 현재 보유 중인 3400만회분의 백신 상당수는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유행 예측에 실패한 '뒷북 방역'에 애꿎은 세금만 낭비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일 질병관리청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질병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위원 전원 동의로 XBB.1.5 변이 기반의 새 백신을 다가오는 동절기 접종용으로 결정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오는 10월 접종 시작을 목표로 백신 도입 시기와 공급량 등을 제조사와 협의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계획은 8월 말~9월 초에 발표할 것"이라며 "동절기 접종을 위해 기존 계약 물량 일부를 새 백신으로 전환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오미크론 하위 변위인 'XBB' 계열 변이다. 지난 1일 기준 XBB.1.9.1(24.5%), XBB.1.9.2( 21.6%), XBB.1.16(20.8%), XBB.2.3(14.1%), XBB.1.5(10.3%), 그 외 XBB 계열(5.2%) 등 전체의 96.5%가 XBB 변이에 해당한다. 코로나 XBB 변이는 인도에서 시작돼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됐다. 올해 초만 해도 오미크론 하위 변위 중 BA·1과 BA. 5, BA. 2.75가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몇 개월 만에 '바이러스 지도'가 확 바뀌었다. XBB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우세종으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할수록 전파력은 높아지고 면역 회피 능력이 향상하는 경향을 띤다. XBB 변이 역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실제 XBB 변이는 기존의 BA.1과 BA.4/5 기반의 개량백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연구부가 지난 5일 '코로나19 빅데이터 활용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화이자·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추가 접종)은 오미크론 변이가 거듭될수록 감염병 예방 효과가 크게 줄었다. 특히, 50세 이상에서 4차 이상의 백신 접종은 초기부터 코로나19 발생을 예방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6.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에 시간이 흘러 그나마 남은 백신의 예방 효과까지 줄면서 코로나19 재유행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주(4~10일) 주간 일평균 확진자 수는 2만2819명으로 전주 대비(6월 25일~7월 1일, 1만7443명) 30%나 늘었다. 지난달 1일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된 후 감소세를 유지하다 7월쯤 증가 추세로 전환됐고 갈수록 증가 폭이 커지고 있다. 감염재생산지수(확진자 한 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수치)도 1을 넘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코로나19 변이가 지속해서 나타나는 상황에서 현재의 코로나19 백신으로는 감염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코로나19 유행을 컨트롤하는 기능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라면서도 "단, 중증도를 낮추고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는 변이와 관계없이 확인되는 만큼 '백신 무용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대본에 따르면 지난주 일평균 재원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117명과 5명으로 매주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XBB 타깃 '새 백신' 개발 완료…우리나라도 도입 검토
XBB 변이가 유행하면서 이에 맞춘 '새 백신' 도입의 필요성은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인플루엔자처럼 감염병 백신은 최근 유행을 주도하는 변이를 기본으로 보급하는 게 원칙이다. 기본적인 구조 등이 유사해 기존 백신보다 더 큰 감염 예방과 중증도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 백신·생물학적 제제 자문위원회(VRBPAC)는 지난달 회의를 열어 다가오는 가을~겨울에는 오미크론 XBB.1.5를 타깃으로 하는 코로나19 단가 백신을 맞도록 권고했다. 현재 유통되는 BA.1, BA.4/5 기반의 개량 백신보다 XBB를 잡는 '새 백신'이 유행 억제에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정부가 고령층의 동절기 코로나19 백신 추가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21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4주간 '집중 접종기간'을 운영한다. 겨울철 재유행에 대비해 위중증·사망 위험이 높은 60세 이상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목표로, 접종 편의를 높이기 위해 사전예약이나 당일예약 없이 신분증만 지참해 병원에 가면 바로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장접종'을 시행한다. 접종자에게는 템플스테이 할인, 고궁·능원 무료입장 등 혜택을 주고, 접종률이 높은 지방자치단체에는 포상 등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사진은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김내과의원에서 한 시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 접종을 받는 모습. 2022.11.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이자와 모더나는 이미 XBB 기반 백신 개발을 완료한 상태로 미국 FDA와 유럽 의약품청(EMA) 등 주요 국가의 규제기관에 품목 허가 신청서를 잇달아 제출하고 있다. 모더나코리아 관계자는 "XBB.1.5 타깃 '새 백신'에 대한 임상 시험 중간 분석 결과 해당 백신을 5차 추가 접종할 때 면역 반응은 접종 이후 15일 차에 최근 유행하는 XBB.1.16와 XBB.2.3.2를 포함한 하위 변이에서까지 강력한 중화 반응을 유도했다"며 "현재 한국의 규제당국과도 도입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사용되는 새 백신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전량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보유 백신 상당수 '폐기' 불가피할 듯
새 백신이 도입되면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 중인 단가·개량 백신은 상당수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보유 백신은 지난 1일 기준 총 3475만회분이나 된다. 종류별로 △화이자 364만8000회분 △화이자(소아용) 57만1000회분 △얀센 189만6000회분 △노바백스 34만5000회분 △스카이코비원 43만7000회분 △화이자(영유아용) 34만3000회분 △화이자(BA.1) 640만8000회분 △화이자(BA.4/5) 1400만회분 △모더나(BA.4/5) 610만1000회분 △화이자(BA.4/5 소아용) 100만3000회분 등이 물류 센터에 재고로 쌓여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까지 1176만2000회분의 백신이 폐기됐는데 올해는 훨씬 더 폐기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까지 폐기된 백신 중 개량백신은 29만4000회분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이전에 구입한 단가 백신(화이자 503만1000회분, 모더나 450만8000회분, 노바백스 151만5000회분)이었다. 새 백신이 개발되면 현재의 개량백신도 불분명한 효과 등을 이유로 앞서 단가백신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신도 유효기한이 있는데, 오는 9월 말까지 기한이 만료되는 물량도 전체의 3분의 1(1360만회분)에 달한다. 질병청에 따르면 이미 구매한 백신을 새 백신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구매 계약상 비밀 유지 의무를 이유로 정확한 백신 단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1회분당 2만5000원 정도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까지 폐기된 백신에 투입된 돈은 3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한 백신은 이보다 3배 정도 많다. 추정 금액은 9000억원에 육박한다. 정부가 적절한 수요예측 없이 백신 물량을 사들인 뒤 폐기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일각에서는 '혈세 낭비'라는 지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질병청은 "코로나19 백신의 활용도 제고와 폐기 최소화를 위해 외교부와 협조를 통한 해외공여, 기도입 백신의 유효기간 연장 조치, 도입 예정물량의 시기 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에 있다"고 전했다.

(서울=뉴스1) 인수위사진기자단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개발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2022.4.25/뉴스1


힌편, 국내 백신 제조사가 올가을 유행에 대비해 새 백신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스카이코비원)을 개발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머니투데이에 "현재 스카이코비원의 XBB 변이 예방 효과를 확인하고 있지만, 해당 변이를 타깃으로 한 별도의 새 백신 개발은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엔데믹 상황에서 향후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변이 바이러스에 광범위하게 대응하기 위해 코로나19·사스(SARS) 바이러스의 상위 계통인 '사베코 바이러스'(Sarbeco Virus)를 타깃으로 한 '범용 백신' 개발에 힘을 싣는다는 전략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으로부터 초기 연구개발비 5000만 달러(약 653억원)를 지원받아 현재 초기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이미 개발에 성공한 스카이코비원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앞으로 어떤 코로나19 변이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빠른 백신 개발을 위해서는 '백신 플랫폼'의 고도화가 필수"라며 "백신 수요 예측, 막대한 인력·장비 투자 등 개발 과정을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