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나는 모든 공권력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2023. 7.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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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스1) = 나는 모든 공권력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일상의 평온함은 국가권력이 치안에 자원을 투입한 덕분이다. 문제는 구조를 들여다보지 않고 약자의 고통에 무감한 권력이다.

산업재해 사고사망자수의 절반은 건설업 노동자고, OECD 35개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체불임금 1조 3500억 원 중 건설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제일 높다. 그런데 이들의 열악함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구조와 그로 인한 최저가낙찰제라는 건설업 자체의 오래된 구조와 관행에 기인한다.

건설업은 대부분 경쟁입찰로 공사업체를 결정하는데 발주사는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원청사를 낙찰한다. 원청사 역시 수십개 업체들이 출혈경쟁 끝에 최저가를 써낸 하도급을 선택한다.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있지만, 2차, 3차불법 도급은 관행처럼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공사비는 최초 발주 가격에서 30~40% 수준으로 떨어진다. 마지막 단계 하도급업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어 저가 불량 자제를 사용하거나 최소인원만 고용해 빠르게 공사를 앞당겨 비용을 절감해왔다. 건설현장의 노동자가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며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게 된 구조적 이유다. 2023년 6월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학동 아이파크 아파트 현장도 현대산업개발의 최초 단가는 단위면적당 28만원이지만, 2차 하도급에서는 4만원이었다. 절감된 원가로 버티려고 무리하게 공사기일을 앞당기다 결국 6명이 매몰되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그동안 입법부와 행정부는 건설업의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바로잡거나, 만성적 임금체불‧고용불안이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조합원이 몇 년 사이 급증했다. 노동조합은 하도급-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중간착취를 방지하고자 건설사에 직고용을 요구하며 공사 현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임금체불 업체를 찾아가 담판도 지었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불합리한 납기일 줄이기에 반대하거나, 일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제도, 쉼터나 화장실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부작용도 늘었다. 노동조합이 인력공급 역할을 대신하며 노동조합 간 일자리를 놓고 갈등도 심각해졌다. 비위행위를 하는 조합 간부도 생겨났다. 노조를 사칭해 돈을 요구하거나 집단행동을 일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끄럽고 거친 시위방식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존재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무법지대 건설 현장에서 건설노조가 각종 안전 제도나 장치가 도입되도록 끈질기게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떼인 임금을 받아주고 근로계약서를 쓰게 해서, 일하고도 돈을 받지 못해 절망하는 노동자 숫자가 이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이고 구체적 맥락은 모두 소거되고 건설노동조합은 ‘폭력배’라 불린다. 1484명이 송치되었고 구속자수는 132명으로 증가했다. 결국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졌다. 수사를 받은 건설노동자의 1/3은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조사도 있다.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나름 유익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믿었던 이들일수록 연일 이어지는 수사와 보도에 존재 자체를 부인당하는 고립감, 심리적 충격이 커져서다.

사실 경찰도 정부 부처도 오래된 건설업의 구조와 관행,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모르지 않는다. 하청업체가 ‘법대로’ 중간 도급업자를 배제하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관리했다면 지금만큼 건설노동자의 삶이 열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법치’는 수십년 불법을 자행한 업체나 무법이 판치는 건설현장을 규제하고 단속하기보다 피라미드 가장 하단인 최약자에게 가장 매서운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단순히 ‘노동조합’을 배제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노가다’라고 불리며 ‘천하고 힘든 일’을 하는 ‘하층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멸시도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건설노동자가 사회‧문화적 자원이 많거나, 정치‧경제엘리트와 접촉점이 있는 사회집단이었다면 지금처럼 상대 전체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공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민주정치의 미덕은 서로 다른 입장, 다양한 이익과 열정을 가진 이들의 갈등을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처리해 사회가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로 퇴락을 막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시민을 더 거칠게 만들고 최악의 경우에는 폭력이 정당한 대응일 수 있다는 신호를 사회 곳곳에 보낸다. 강대강 대치의 결과가 어떤 비극으로 이어지는지 우리는 적지 않게 경험했는데 말이다. .

시민을 거칠게 만드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지향에 차이는 있어도 그 어떤 노동운동도 정치 밖에서 저항만 하길 원하진 않는다. 민주화 36년을 넘어서며 노동운동도 거리에서 싸우는 것 이상으로 기업과 정부와 협상하고 조정해 정책을 만들어왔다. 노동조합은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대한 의견은 엇갈려도, 수십 개에 달하는 정부위원회나 회의체에 참여해왔다. 그래야 현장에서 수용성 높은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있어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의 목표는 지지자나 관련 단체에게 단호한 의지를 과시해 지지율을 올리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 같다. 세계 최고의 기술과 문화컨텐츠를 자랑한다는 한국에서 야만의 시대가 반복되는 게 아닌가싶어 두려운 요즘이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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