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에 들어오는 가상자산… 투명성 강화 취지, 업계 "환영"
①가상자산 '수익' 인식 까다로워진다… 회계지침 제정, 주석 의무화
정부가 가상자산(암호화폐) 회계·공시 투명성 제고에 나섰다. 가상자산 발행사가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전까지 가상자산 매각 대가를 부채로 인식하도록 강제한다. 지난해 초 발생한 위메이드의 위믹스 유동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가상자산거래소가 투자자 위탁 가상자산을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회계처리기준도 신설해 해킹, 전산장애 등으로 가상자산 유출 사고 발생 시 거래소의 보상 책임을 명확하게 부과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금융위원회는 11일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과 주석공시 의무화 공개초안을 발표했다. 최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정에 발맞춰 가상자산 거래와 관련한 기업 회계투명성을 제고하자는 취지다. 감독지침은 올해 10~11월 중, 주석 의무화는 2024 회계연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위의 회계지침에 따르면 발행사는 보유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전까지 가상자산 매각 대가를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 발행사가 플랫폼 구현이나 재화·용역 이전 등 의무를 다하면 매각 대가를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동안 수익인식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판단 기준이 주체마다 달랐던 문제점을 보완하는 조치다.
또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플랫폼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수 없거나 관련 개발 활동이 무형자산 기준서의 지침에 맞지 않으면 비용으로 회계 처리하도록 했다. 만약 회계 기준상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는 경우에는 본질적 가치 손상 여부를 회계연도마다 검토해야 한다.
가상자산사업자는 경제적 통제권을 고려해 고객이 위탁한 가상자산의 자산·부채 인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고객위탁 가상자산 인식 여부 결정을 위한 고려 요소가 불분명한 문제점을 보완했다.
가상자산의 공정가치 측정을 위한 통일된 기준과 절차도 마련된다. 그동안 가상자산의 공정가치는 회사나 감사인의 통일된 기준이 없어 단순히 기준서만으로는 실무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금융당국은 공정가치 등의 개념에 대한 구체적 조건을 사례와 함께 제공해 회사와 감사인이 재무제표 작성과 감사 절차 수행 시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가상자산 주석공시 의무화 조치도 이뤄진다. 가상자산 발행사는 가상자산의 수량과 특성 등 일반 정보를 포함해 가상자산 매각 대가에 대한 수익 인식 등 회계정책과 의무이행 경과에 대한 회사의 판단까지 상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특히 가상자산 발행 이후 자체 유보한 가상자산에 대해 보유정보와 기중 사용내역까지 공시가 의무화된다.
②위믹스 유령매출 논란 없어진다…게임화폐, 실제 사용돼야 매출로 인식
지난해 초 발생한 위메이드의 가상자산 위믹스 유동화 논란은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회계·공시 투명성 제고를 단행한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위메이드는 2021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56% 증가했다고 밝혔다. 게임 매출도 있었지만 게임에서 채굴해 게임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위믹스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위믹스 유동화 매출만 2255억원에 달했다. 매출 중 상당액을 이익으로 잡아 주당 650원의 배당금 지급도 결정했다.
위메이드는 이듬해 3월 2021년 연간 매출의 40%에 달하는 2234억 원을 매출에서 제외한다고 공시를 번복했다. 회계법인에서 해당 실적을 당해 매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당초 위메이드는 위믹스를 게임에서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위믹스가 적용된 게임이 별로 없었다. 상품권은 팔았는데 물건을 살 매장이 없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위메이드의 2021년 영업이익도 기존 3259억원에서 1009억원으로 변경되면서 3분의 1토막 났다.
위믹스라는 가상자산을 판매한 대금을 매출이 아닌 선수수익(일종의 선매출, 회계상부채)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회계법인의 판단이었다. 위믹스 사용자들이 가상화폐를 사용하고 나면 선수수익은 본래의 매출로 인식하면 된다.
송병관 금융위 기업회계팀 과장은 "게임상의 유틸리티 토큰을 개발하는 회사가 개발하고 (이용자에게) 넘겨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출로 처리할 수 있다"며 "그러나 (사용처가 없는) 토큰에 과연 투자자가 투자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구두 상품권이 구두로 교환돼야 매출로 잡는게 맞다는 뜻이다. 송 팀장은 "(토큰) 개발비 역시 자산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모두 다 비용으로 회계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가상자산이나 플랫폼이 무형자산 정의를 충족하고 개발 활동에 해당한다는 6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개발비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당국의 방침이다. 개발된 가상자산이 향후 시장에서 거래돼 가치가 충분히 형성될 수 있다는 등의 객관적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다.
국제적으로 보면 독자적 회계기준을 사용하는 미국과 일본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고객위탁 가상자산 회계처리 지침을 내놨지만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회계처리기준 제정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상태다. IASB는 향후 5개년(2022~2026년) 업무계획 수립에서도 가상자산 거래를 제외했다.
IFRS 제정속도가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상자산 관련 규율체계가 마련된 만큼 국제회계기준과 상충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다만 송 팀장은 "가상자산 회계처리기준이 마련됐다고 해서 가상자산 자체가 지닌 변동성이나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라며 "가상자산 투자는 본인 책임하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가상자산거래소, 투자자가 맡긴 코인도 재무제표에 반영한다
고객위탁 가상자산을 가상자산사업자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회계처리기준이 신설되는 배경에는 해킹, 전산장애 등 사고에 대한 사업자의 대비를 강화하려는 금융당국의 의도가 깔렸다. 가상자산거래소가 자산으로 인식한 자체 보유 가상자산과 달리 고객위탁 가상자산의 경우 재무제표에서 빠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당국은 고객위탁 가상자산의 거래소 재무제표 반영은 탈취 사고 발생 시 보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가상자산 회계기준 제정으로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는 고객위탁 가상자산을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고객위탁 가상자산을 자산·부채로 잡을지 여부는 가상자산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고려해 사업자가 판단하다. 금융위는 고객위탁 가상자산의 자산·부채 여부 판단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정할 방침이다.
감사인이 금융위가 제시한 기준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자산·부채 여부를 결정하고, 당국 판단이 다를 경우 회계처리 수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다만 개별 가상자산의 소유자를 식별할 수 없다면 사업자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트코인 100개 중 5개가 탈취됐으면 누구 것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객 자산으로 인정할 수 있고 구분이 안 되면 사업자 것으로 잡아야 한다"며 "고객위탁 가상자산이 사업자 재무제표에 들어가면 탈취될 경우 무조건 사업자가 물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업자가) 고객 지시에 의해서만 운용된다고 주장하나 사업자가 마음대로 이체하고 교환할 수 있다"며 "그렇게 보인다면 사업자 자산으로 처리하란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국내 5대 원화거래소들은 재무제표 주석에 고객위탁 가상자산 내역을 공시하면서도 재무제표 계정과목에 반영하진 않았다. 고객위탁 가상자산이 자산 정의와 인식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자체보유 가상자산의 경우 무형자산 또는 유형자산으로 반영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5대 거래소의 고객위탁, 자체보유 가상자산은 각각 18조3067억원, 3710억원으로 집계됐다. 고객위탁 가상자산은 비트코인 3조6484억원(19.9%), 리플 3조2244억원(17.6%), 이더리움 2조3902억원(13.1%) 등 순으로 비중이 크다.
고객위탁 가상자산에 대한 재무제표 주석공시도 의무화된다. 가상자산별 물량과 시장가치, 가상자산 보유에 따른 물리적 위험과 예방을 위한 보호수준 등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그동안 5대 거래소의 가상자산 보유 내역 공개는 회계처리 의무에 따른 정보 공개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일부 거래소의 경우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 내역만 기재하는 사례가 있었다.
주석공시 의무화로 상세한 정보 공개가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자가 보유한 모든 가상자산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며 "사업자들이 실무적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투자자에게 제대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④'코인 러그풀' 사라질까…가상자산 회계지침에 업계는 "환영"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회계지침으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으나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반응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 A씨는 "그동안 가상자산 관련 회계 공시가 다소 불명확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한 부분이 있었다"라며 "이번 방안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에게 보다 일관적이고 명확한 정보가 제공돼 투명한 시장환경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최근 통과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과 마찬가지로 업계에 긍정적"이라며 "회계 지침이 명확하게 정해지면 업계 내 다른 업체의 리스크를 판단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에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번 회계처리 감독지침은 오는 10~11월 중, 주석 의무화는 2024 회계연도부터 시행된다.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일부 업계 관계자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 C씨는 "준비 시간 부족이 가장 우려된다"라며 "소수 최상위 사업자를 제외하고는 회계 인력이 부족해 새로운 지침을 분석하고 적용하기 위한 시스템 개편에 착수하는 데 부담이 있다"고 토로했다.
B씨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은행이나 증권사처럼 거래를 정산할 수 있는 중간 허브가 있는 게 아니"라며 "지침에 따르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면 시스템과 연동을 하더라도 수기로 확인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을 텐데 금융당국이 제시한 방안의 완전한 적용은 예정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하게 구체적인 기준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 D씨는 "초안에선 고객이 위탁한 가상자산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에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이외에도 가상자산의 시장 가치 산정 관련 사항 등이 더 명확해져야 시행 초기의 혼란이 덜할 것"이라고 봤다.
이번 지침으로 가상자산 발행사는 보유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전까지 매각대금을 부채로 인식하게 됐다. 발행사가 가상자산을 통한 플랫폼 구현이나 재화·용역 이전 등 의무를 다하면 매각 대가를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동안 수익 인식 시기에 대한 판단 기준이 주체마다 달랐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해당 지침이 가상자산 발행사의 러그풀(rug pull·가상자산 개발자의 투자 회수 사기 행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도 나왔다. A씨는 "그동안 코인 업계에서 러그풀하는 업체가 많았기 때문에 발행사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다"라며 "코인 매각대금을 부채로 관리하면 비용 집행에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정혜윤 기자 hyeyoon12@mt.co.kr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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